시민들로 북적이던 농성장엔 노란리본만 쓸쓸하게 나부껴…서명방문객도 3분의 1로 줄어 “안전의식 아직 바뀐것 없는데…”…봉사자들 씁쓸함 감추지 못해
“추석 이후로 광장을 찾는 시민들이 확연히 줄어든 건 사실이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던 개신교 전도사 한모(35) 씨는 불과 몇 개월만에 달라진 풍경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농성장이 세워진 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 농성을 벌이던 7~8월만 해도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로 북적이던 농성장엔 이제 찬바람만 불고 있다. 광화문 광장의 쓸쓸한 세밑 풍경이다.
옷깃을 여며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30일,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의 시선은 더이상 세월호 농성장이 아닌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에 쏠려 있었다. 사랑의 온도탑에 밀려났는지, 횡단보도 옆에 자리 잡은 서명대는 한산했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사랑의 온도탑과 세월호 농성장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사랑의 온도탑과 세월호 농성장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한 씨에 따르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하루 평균 약 300명 남짓이다. 지난 여름만 하더라도 네댓개의 천막에서 하루 1000여명이 넘게 서명을 했지만 서명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한 씨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정말 오랜만에 서명자 수가 1500명을 넘었다”며 “날이 추워지다보니 서명대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멀게 만드는 것은 비단 동장군만이 아니다. ‘시간’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우는 가장 큰 적이다.
대학생 윤모(25) 씨는 “처음에는 서명대 앞을 그냥 지나가는 게 미안해서 열심히 서명을 했지만, 요즘엔 이런 풍경이 일상처럼 느껴진다”며 “다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광화문 광장을 지나던 직장인 박모(53) 씨도 “(참사가 벌어진지)벌써 몇 달이 지났는데 예전처럼 (농성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겠냐”면서 “이렇게 가다간 그런 사고가 났는지도 다 잊을 것”이라고 혀를 찼다.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150일이 훌쩍 넘으며 뽀얀 빛을 발하던 천막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타는 속내 만큼이나 시커멓게 변했다. 그나마도 텅 빈 천막이 더 많았다. 농성장 방문객들에게 차와 커피를 대접하는 ‘사랑방’과 ‘노란리본 공작소’의 자원봉사자들이 리본을 만드는 천막에만 예닐곱 명이 모여 있었다. 유가족 대부분도 간담회 등 외부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 영석이 아버지, 민우 아버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장송희(35) 세월호 농성장 상황실장은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심을 끊었다기 보단 덮어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장 실장은 “우리 사회에 현재 세월호 트라우마가 엄청나다”면서 “배 타고 제주도를 가는 사람도 많이 줄었고, 자식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할 때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는 부모도 거의 없는 게 사실이지 않는가”라고 했다.
서명대에서 서명을 받고 있던 한 어머니도 “(세월호 참사 전에는) 집에서 뉴스도 안 봤는데 참사 후 애를 키우던 내가 벌써 몇달째 농성장에 나와 서명을 받고 있다”며 여전히 세월호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한편 전명선 세월호 가족대책위원장은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도 올 한해 우리 사회가 변한 게 거의 없었다”면서 “내년에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 위원회를 통한 진실규명이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진실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해 유가족들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나가던 시민 김형국(43) 씨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할 문제가 바로 여기 광화문 풍경에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박혜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