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대 이뤄진 국가개조 명분하에 행정 합리성·응집력 해체해선 안돼 뿌리깊은 낙하산·회전문인사 개선 등 보다 큰 행정개혁 밑그림 필요한 시점
2014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마음이 개운치 않다. 뭔가 많은 숙제들을 남겨둔 듯 마음이 무겁다. 올해는 특히 정부행정과 공무원들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드러난 한 해였다. 행정을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갖게 되는 주관적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일 년 내내 행정에 관련된 이런저런 문제와 사건들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유독 높았던 한 해였다.
우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집권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이 행정 관료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진전이 어렵다는 틀 짓기(framing)가 연초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주 리조트 붕괴, 포항 가스폭발, 서울 지하철 추돌, 판교 환풍구 붕괴, 구제역 확산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사건ㆍ사고를 접하면서, 영역에 따라 정부규제는 여전히 필요하되, 공무원들이 그 집행을 저비용 고효율 방식으로 수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도 대두했다.
연초부터 국민적 관심사로 떠 오른 또 다른 사안 하나는 소위 ‘관료 마피아’ 문제였다. 대부분의 부처들이 퇴직한 공무원들을 관련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민간조직에까지 내려 보내는 ‘낙하산 인사’가 여기저기서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아연실색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발생한 ‘4ㆍ16 세월호 참사’는 한국 관료들의 사익추구 성향에 더해 무능함 또한 드러내 보인 전(前)근대성의 ‘종합 세트’였다. 이런 국민적 공황상태에서 엉겁결에 집권정부가 내세운 ‘국가개조’의 당위성에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반기에도 대입 수능문제 오답파동에서부터 원전부품 납품관련 수뢰자의 구속에 이르기까지 후진국형의 행정 무능과 부패가 연이어 발생했다. 한때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던 빈곤국형 질병인 결핵이 오늘날 세계 15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에서 다시 번지고 있는 현상을 연상시킨다. 그간 미루기만 해오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드디어 발표되면서 최대의 정치 현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필요성에 공감한 ‘국가개조’는 답보 상태에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마련된 조직개편안에 따라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혁신을 통해 행정 관료제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외환위기 직후에 도입을 시도했던 개방형, 성과급, 계약제 등 친(親)시장경쟁원리의 개혁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필요한 개혁 방안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행정에 대한 더 큰 그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바람직한 발전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일사분란하게 집행해주기를 기대하는 국민적 정서가 여전한 ‘목적국가(purposive state)’ 한국에서 근대관료제 행정의 합리성과 응집력을 해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의 공무원들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굳이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책연구원이나 외부로부터 충분히 지원 받을 여지도 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주무 기관들이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에는 낙하산 인사들에 의한 포획때문임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공ㆍ사부문간의 회전문식 인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들고날 때 전개될 유착관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제대상인 민간항공사 출신의 소속 공무원들에 의해 국토부가 포획된 것이 최근에 목격된 한 가지 사례다. 친시장원리 행정개혁을 추진하려면 먼저 근대관료제의 기본 정신인 탈(脫)사인성(impersonality)부터 확립돼야만 하는 이유다. 우리 행정에 가장 취약한 이 문제부터 차근차근히 확립해 나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