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샌드박스 4년만에

뱅샐·핀크 등도 적자 눈덩이

고금리 원인...수익 힘든 구조

“청년들이 핀테크 기업을 창업하고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겠다”(2019년 10월,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

“핀테크의 다양성과 혁신이 정체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기존과는 다른 성장 방식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핀테크 산업의 재도약을 뒷받침할 시스템을 구축하겠다”(2023년 8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관련기사 3면

금융에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소비자의 편익을 제고한다는 대의명분에 힘입어 한 때 ‘성공신화’를 약속했던 국내 혁신 핀테크사들이 생사기로에 섰다. 가계대출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대출비교 서비스는 물론이고, 마이데이터를 활용한 투자·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까지 만성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시작된 지 불과 4년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핀테크 산업을 둘러싼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자본잠식 카·토·핀 결손금 1조 넘어...전년 比 37% ↑=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핀테크 계의 ‘빅4’로 불리는 ‘네·카·토·핀(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핀다)’ 중에서 네이버페이를 제외하곤 모두 적자를 기록 중이다. 대출비교 서비스 핀다의 경우 지난 2021년 연간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다시 적자전환했다. 카카오페이도 지난해 말 첫 연간 턴어라운드(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본업보단 유보현금 운용을 통한 금융수익 증가의 영향이 컸으며 상반기 기준으론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토·핀’ 3사의 지난해 말 기준 결손금 총합은 1조580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769억원) 대비 37.51% 넘게 늘었다. 결손금은 경비가 총 수입금액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손금이 확대됐다는 건 자본잠식 상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나마 카카오페이와 토스, 그리고 핀다는 최근 대환대출 플랫폼까지 성공적으로 출시한 성공사례에 속한다. ‘빅4’에도 들지 못하는 핀테크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카드·비교추천 서비스로 시작해 가계부 앱으로 사용자수가 급증했던 뱅크샐러드는 서비스를 출시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여전히 45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결손금 역시 전년 대비 47%나 늘어난 1410억원을 기록 중이다.

하나금융지주가 MZ(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해 출자한 핀테크 업체 핀크 역시 순탄치 못하다. 지난해 말 기준 핀크의 순손실 규모는 124억원. 결손금은 지난해 자본잉여금으로 보전한 결과 832억원에서 56억원으로 축소시켰지만 여전히 기업 규모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군소 핀테크 중에서는 폐업을 하거나 다른 금융사에 인수·합병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마이데이터·대출비교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핀테크 깃플은 최근 로보어드바이저 기업 쿼터백에 인수됐으며 ‘알다’를 운영하는 팀윙크 역시 KB캐피탈에 흡수합병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처음 대출비교 서비스로 혁신금융을 지정받은 ‘1세대 핀테크’인데, 이때 함께 지정된 팀윙크, 마이뱅크, 핀마트, 핀다 중 살아남은 곳은 핀다가 유일할 정도다.

중소핀테크 관계자들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의미하는 월간활성이용자수(MAU) 마저 정체돼 답답한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플랫폼 사업의 경우 애초 이용자가 많은 곳에 더 많은 이들이 유입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짙은데, 토스·카카오페이의 경우 ‘국민앱’이라고 불릴 정도로 MAU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다른 핀테크의 경우 홍보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토스의 경우 8월 기준 MAU가 1588만6590명(토스뱅크 합산), 카카오페이는 426만7972명(지난 2분기 카카오톡 유입 포함시 2425만명)에 달하는 반면, 뱅샐(60만6716명)·핀다(54만819명)·핀크(22만447명)는 그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다.

▶금융당국 ‘핀테크 혁신’ 외쳤지만...현실은 정반대=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금융 규제 샌드박스(규제 유예 제도)를 시작으로 시장 자율적인 ‘핀테크 혁신’을 표방해왔다. 마이데이터 등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한 것도 소규모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업에 빠르게 진입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의 선언대로 혁신금융으로 인정받은 핀테크의 IPO, M&A 사례가 나타나기 보단 경영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청년들이 일자리를 잃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 교수는 그 원인에 대해 “미국의 기준금리가 6% 가까이 올랐으면, 시장금리는 10% 이상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며 “핀테크의 수익모델이 망가졌다기 보다는 금리환경 영향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핀테크의 경영능력을 차치하고, 거시적으로 금리가 여전히 높아 존속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리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을 받더라도 핀테크 산업 자체가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핀테크 업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유동성의 문제라기 보단 애초에 핀테크 산업이 수익성이 별로 나기 힘든 구조인 것 같다”며 “벤처캐피탈(VC)도 이를 인지한 채 더 이상 지갑을 열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혁신금융 서비스는 핀테크뿐 아니라 전통 금융회사라도 혁신적인 걸 시도하고 싶을 때 규제 때문에 못하면 안 되니 일시적으로 실험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취지”라며 “하지만 (혁신금융을 받은) 핀테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기업이 자금 조달이 잘 안돼 어려운 상황인 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홍승희·서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