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미국이 북한을 소니 픽처스 해킹의 배후로 지목하고 6년 만에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검토하며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물증 부족과 실효성 논란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대응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사이버 전장의 바이블’로 불리는 탈린 매뉴얼을 기초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사이버 공격을 통한 비례적인 보복조치도 예상되지만, 그외에 경제제재 강화, 외교적 압박 등 그 외 다른 수단들도 북한을 징벌할 우회적 카드로 꼽히고 있다. ▶北, 6년 만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언급=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에서 소니 픽처스 해킹사건과 관련,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고 단순히 그날의 뉴스에 따라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체계적으로 보고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 같은 강경파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에서 더 나아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해제됐던 북한에 대한 제재의 재이행을 주장하기도 했다.
매케인 의원은 21일 CNN에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새로운 전쟁 행위에 대한 징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니 해킹을 전쟁이 아닌 ‘사이버 반달리즘’(공공기물 파손행위)으로 본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가능성은…=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북한에 취할 수 있는 유력한 대응조치로 떠오르면서 실현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이버 테러’에 대한 법적 해석 논란, 정치ㆍ외교적 부담 등으로 재지정 결정을 더 두고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미국 연방법은 폭력과 물리적 공격이라는 테러행위를 지원한 사실이 확인돼야 지정이 가능하고, 국무부는 ▷테러조직에 대한 기획ㆍ훈련ㆍ수송ㆍ물질 지원▷직ㆍ간접적 금융지원▷테러조직의 활동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다른 형태의 협력 등을 지정요건으로 삼고 있어 재지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특히 연방법 22편 38장과 18편 등에 따르면 테러는 ‘물리적 폭력’과 ‘인명에 대한 위해’가 있어야 하지만, 이번 소니 해킹과 같은 사이버 테러는 경제적 손상은 일으켰어도 물리적 폭력이나 인명에 대한 위해는 초래하지 않았다.
사이버보안회사 래피드7의 코리 토머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 정부가 전쟁행위가 아닌 범죄로 톤을 낮춘 것도 극장에 대한 테러 위협은 있었지만 해킹으로 인한 인명피해나 위협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해킹 혐의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또한 이미 북한이 국제사회 차원의 여러 제재를 받고 있어 미국과의 무역ㆍ지원 등을 제한하는 테러지원국 지정은 상징성만 가질뿐 실효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관계 단절로 인한 대화 차단 가능성이 있고 외교적 부담도 높아 오랜기간의 검토를 거칠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 기 폭파사건으로 1988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으나 2008년 1월 부시 행정부와 북한의 핵검증 합의에 따라 리스트에서 삭제됐다. 현재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쿠바, 이란, 시리아, 수단 4개국이다.
▶‘탈린 매뉴얼’, 사이버 보복? 그밖의 대안은=테러지원국 재지정 외에 비례성의 원칙에 따른 보복행위도 북한을 응징할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보복성 사이버 공격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버방위센터(CCDCOE)가 작성한 ‘탈린 매뉴얼’이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탈린 매뉴얼 9조는 “국제적으로 잘못된 사이버행위로 피해를 본 국민은 공격에 책임이 있는 국가들을 상대로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가해국의 질적ㆍ양적 피해와 유사한 비례적 대응, 필요성이란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또 국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의료시설, 관개시설 등에 대한 공격은 피하도록 하고 있으며 댐, 원자력 발전소 등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유의를 당부하고 있다. 언론사, 금융기관, 인터넷, 통신망 등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이버 공격과 같은 보복조치 외에도 우회적 카드를 이용, 북한을 제재할 수도 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뿐만아니라 금융제재 강화, 대북 선전전 강화, 한미 군사훈련 강화 등도 대안으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