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제품의 세계시장 경쟁력 악화가 ‘근본 원인’
투자환경이 중요…규제·노동조건이 부정적 영향
韓 떠나는 외국 기업들…이유는 ‘규제·노동 문제’
中 수출 감소도 ‘제품력 강화’에서 돌파구 찾아야
정만기 한국무역협회(KITA) 상근부회장이 최근 수출 부진에 빠진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국산 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감소’를 지목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일자리 감소와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규제 철폐’와 ‘세제 혜택’을 꼽았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투자가 늘고, 경쟁국인 중국·대만과 기술 격차를 벌려 앞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업의 자율성을 높여야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수출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위기의 한국 무역…해법은 기술 격차=정 부회장은 지난 1983년 행정고시 합격 후 산업통상자원부와 지식경제부를 거치며 수십년간 공직에 몸담은 인물이다. 이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을 거쳐 지난 2022년 9월부터는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수출 부진은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우리가 특히 더 부진한 것이 문제”라면서 “국산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15년 3.18%에서 2017년 3.23%까지 올랐는데 2019년도 2.85%를 기록하며 2%대로 떨어진 후 지난해(1~9월 기준)에는 2.83%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무역협회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0.1%포인트 줄어들면 국내 일자리가 14만개 감소한다고 본다”며 “2017년 기준 0.35%포인트 점유율이 감소한 사례를 대입하면 일자리가 45만개 줄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문제가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면서 “경기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빠르게 개선할 수도 없어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472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시기인 2008년(132억6700만 달러)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기록한 연간 기준 무역적자이자 역대 최대 연간 무역적자다. 부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전년 동월을 기준으로 봤을 때 1월 수출액은 16.6%, 2월은 지난 10일까지 수출액이 10.3% 감소했다.
정 부회장은 수출 부진이 단기적으로 ▷세계교역 급속한 위축 ▷수출 물량·단가 동시 하락 ▷반도체를 포함한 기업의 수출 부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진단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제품의 경쟁력 악화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규제·노동 조건 ‘높은 산’…기업 환경 조성을=그는 근본적인 원인을 규제와 노동 조건이라도 봤다. 기업을 위한 환경 조성이 전제라는 의미다. 정 부회장은 “세계경제포럼(WEF)은 2019년 규제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를 141개국 중 87위, 즉 방글라데시(84위)와 에티오피아(88위) 등 개발도상국들보다 낮게 봤다”면서 “노동 경직성 부분에서는 ▷주52시간근로제 ▷파견·대체근로 불법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이 문제고, 시장진입 장벽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타다 등 플랫폼사업 시장진입규제 ▷상장사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이 외국기업이 골머리 썩는 구체적인 규제들”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 국회는 계속해서 규제를 신설하고, 강화하는 차원에서 입법을 하고 있는데 계속 이래선 안 된다”며 “실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3년간 연간 평균 입법 건수는 2320건에 달했는데 미국 117대 연방의회(상원·하원 포함)의 2021~2022년 연평균 입법 건수 89건과 영국의회(2021~2022년)의 연평균 입법 건수 49건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다”고 짚었다. 이어 “원래 법이라는 것이 규제의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족쇄를 끼우는 상황일 텐데 이런 환경에서 기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나”고 반문했다.
그는 특히 “정치권은 기업의 족쇄가 될 수 있는 규제를 줄여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늘리도록 다독여야 한다”며 “기업에 많은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제공하면 결과적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돼 수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술 격차가 관건…상품 경쟁력 갖춰야=최대 과제는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다. 최근 국제시장에서는 한국 제품과 중국·일본 제품 간 경쟁이 치열하다. 무역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 수출시장 1위 품목으로 본 우리 수출의 경쟁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한국으로부터 1위 품목을 가장 많이 가져간 국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한 3개 품목에서 1위에 올랐다.
일본은 여러 품목 수출에서 우리와 경쟁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위 품목 77개 중 16개 품목에서 일본이 2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이 가운데 7개 품목은 점유율 격차는 5%포인트 미만에 불과하다. 산업별로는 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이 다수 포진한 화학제품(15개)과 철강·비철금속(12개) 품목군에서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수출 강국이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정 부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고, 제품 차별화 등을 통해 차세대 유망 품목 육성에 나서야 하는 이유”라며 “품질력 강화를 통해 기술 격차를 벌려야 장기적으로 수출을 늘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수출 부진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총 91억7000만달러로 전년보다 31.4% 감소했다. 이는 중간재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4분기 총수출 감소액은 전년 동기보다 175억달러 줄었는데, 이 중 85.7%(약 150억달러)가 중간재였다. 같은 기간 자본재는 45억달러 감소, 소비재(14억달러)와 1차산업생산품(1억달러) 수출이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우리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한 비중이 74.2%에 달하는 만큼 수출업계의 우려가 큰 대목이기도 하다.
▶‘BYE 코리아’ 한국 떠나는 외국기업 잡으려면=그는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늘리기 위한 ‘규제 철폐’와 ‘세액공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가 줄면서 자본 공동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창원이나 울산 등 지방 공업도시의 외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한국산 제품’으로 해외로 수출되고, 이는 지방 도시의 일자리 증진으로 이어졌다”며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투자를 줄이면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줄고, 자연스럽게 수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수출입은행과 산업통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2017년도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액은 88억9800만달러에서 2022년(1~3분기) 기준 198억6800만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우리가 외국 기업에서 투자받은 액수는 56억1100만달러에서 2022년(1~3분기) 기준 23억8400만달러까지 떨어졌다. 순투자 적자는 2017년 32억8700만달러 수준에 그쳤지만, 지난해(1~3분기)는 8.3배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순투자 적자액은 174억8400만달러까지 급증했다.
정 부회장은 “2017년에만 하더라도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와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규모 차이가 비교적 작았지만, 갈수록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가 감소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액과 해외 기업의 국내 직접 투자액을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기업의 유입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한국에 공장을 짓고 물건을 생산하는 매력도가 외국에 비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노동시장의 경직도가 높고, 또 신경 써야 하는 규제가 많아 기업하기 힘든 구조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을 영위하는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꾸준히 만나는데, 정규직으로 사람을 뽑아야 하는 국내 특성상 시장이 안 좋아지면 적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투자를 주저한다”며 “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노동 경직성까지 짊어지고 가자니 이득보다 손실이 심해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 환경에 맞춘 세제 혜택…좋은 제품의 바탕=세제 혜택에 대해 신기술이 주목받는 새로운 무역 환경을 고려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지금 산업은 앞선 ‘산업혁명’ 때와 같은 대변혁기에 놓여 있다”며 “구체적으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데, 중간재 수출이 많은 우리 입장에서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 산업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각국이 자국 산업 육성하고, 각종 기업 유치정책을 내세우고 있는데 우리도 여기에 발맞춰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정 부회장은 “우리는 전기차 생산공장을 투자할 때 세액공제가 1%에 불과하고 올해에만 전기차 생산공장에 대한 공제액이 조금 늘어 3%, 또 전기동력차 기술개발에 대한 세제감면도 일부 부품에만 20∼30%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런 혜택이 더 늘어나야 기업이 공장을 국내에 짓고 수출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최근 불거진 정치문제 우려에 대해 “미·중 갈등 때문에 중국 사람들이 우리 물건을 사겠냐고 생각하는데 경제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양안 갈등을 겪은 대만은 중국 수출이 우리보다 훨씬 줄지 않았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 격차가 줄고, 중국에 수출하던 중간재의 현지 생산이 늘고 있다”면서 “중국이 코로나19 이후 빗장을 풀고 경기 개선의 여지가 큰 만큼 우리도 기술력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좋은 제품을 만들면 정치적·대외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글로벌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담=권남근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정리=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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