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지난해 북한에 42일 간 억류됐다 풀려난 6ㆍ25전쟁 참전용사 미국인 메릴 뉴먼(85ㆍ사진)의 숨겨둔 이야기가 공개됐다.
9일(현지시간) CNN 방송 웹사이트에 ‘마지막 전쟁포로: 85세 적군 스파이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뉴먼의 사연에는 그가 지난해 10월 26일 10일 동안의 북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려다 당국에 억류돼 첩보 혐의까지 쓰게 된 연유가 소개됐다.
뉴먼은 당시 북한 수사관들을 떠올리며 “며칠 동안 6ㆍ25전쟁에서 내가 한 역할에 대해 무자비한 신문이 이어졌다”면서 “그러다 갑자기 주제를 바꿔 북한에 왜 오게 됐는지 물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실상을 알기 위해 왔다고 했지만, 수사관들은 내가 관광안내원들에게 ‘구월산유격군전우회’ 회원들이나 그들의 친척 또는 후손들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는지에만 집중했다. 그걸 방북의 주요 이유로 만들려고 했다”면서 “내가 거짓말하고 있으며 첩보죄가 있다고 윽박질렀다. 북한을 잘 알고 싶었다는 방북 목적은 그들의 눈에 위장일 뿐이고 ‘범죄’로 비춰졌다”고 말했다.
뉴먼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그가 방북 전 서울에 있는 6ㆍ25전쟁 전우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에 큰 관심을 보였다. 수사관들은 구월산유격군전우회들에 대해 ‘사무실’을 갖고 있는지,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뉴먼과 자주 만났는지 등에 대해 묻기도 했다.
그러나 뉴먼은 “완전히 털어놓진 않았다”면서 실제보다 축소해 말해줬다고 전했다. 서울에 있는 사무실은 작고 별 특징도 없으며, 구월산유격군전우회 회원들고 만난 적도 많지 않다고 둘러댔다. 다행히 북한 측도 자신이 거짓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넘어갔다고 뉴먼은 회상했다.
시간이 지나자 북한 수사관들은 뉴먼에게 ‘중죄’를 저질렀다고 다시 압박하면서 ‘고위 당국자’와 만날테니 공식적으로 자백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고위 당국자는 “북한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지 집에 돌아갈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사관들은 통역가를 시켜 뉴먼이 자백해야 할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게 했다. “자필로 쓰긴 했지만 내가 원해서 쓴 것이 아님을 (북한 밖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일부러 언어를 정돈하지 않았다”는 게 뉴먼의 설명이다.
고위 당국자와의 만남은 11월 9일에야 평양에 있는 양각도 호텔에서 성사됐다.
사전에 통역가는 반팔 차림의 그가 격식이 없다면서 긴팔로 갈아입게 시켰다. 고위 공직자가 방 안에 들어올 때는 일어서야 한다는 등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지시도 받았다.
50대에 잘 재단된 제복을 입고 나타난 그 고위 공직자는 심각하지만 점잖은 태도를 보였다. 뉴먼은 그 공직자와 악수를 한 뒤 사방에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된 곳에서 (자의가 아닌)자술서를 읽어야 했다.
이 자술서에서 뉴먼은 “6ㆍ25전쟁 동안 지울 수 없는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많은 민간인과 조선인민군 군인들을 죽였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 내 전략적 목표들을 파괴했다”면서 “(종전 후)60년이 흘렀지만 여행을 핑계로 북한에 왔다. 뻔뻔스럽게도 살아있는 전우들을 만나려고 계획했으며 북한과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e북’도 가져왔다”고 밝혔다.
자술서는 이어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무릎을 꿇고 사죄하려 한다”면서 용서를 구하는 내용도 담았다.
실제 자술서를 읽는 말미에 뉴먼이 카메라를 향해 머리를 숙이는 장면이 후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후 뉴먼은 이 자술서에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어, 그 내용이 사실임을 공식화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이 같은 자술서를 쓴 데 대해 뉴먼은 “다른 선택지가 없으면 이런 자백을 해야한다”면서 “그들이 열쇠를 갖고 있고 복죄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대로 자술서를 쓰고 읽어서 결국엔 풀려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