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위 위원들의 7일 청와대 오찬 회동은 ‘정윤회 문건’ 음모 분쇄 결의 대회를 방불케 했다. 박 대통령의 말은 거침이 없었고 격정적이었다.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위 ‘문고리권력 3인방’에 대해서는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일개 내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겁나는 일이나 두려운 것도 없기 때문에, 흔들일 이유도 없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여당도 동요하지 말고 경제혁신 3개년계획 및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추진할 것을 강한 어조로 주문했다. 이완구 원대대표는 이에 각하(閣下)라는 시대착오적 용어까지 써가며 “힘들게 이끌어 가시는 대통령 각하께 박수 한번 보내자”고 했다고 한다.

문건 파동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고 했지만 정작 부끄러워해야할 대상은 자신과 청와대임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건 파동 초기에는 ‘근거 없는 황당한 얘기’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흘새 비선의 국정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증거가 꼬리를 물고 있는데도 여전히 ‘찌라시’라고 일축하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당초 문건 파동의 진앙지는 공공기록물의 작성 및 관리에 부실했던 청와대 였다. 비선실세의 인사 및 국정 농단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장본인도 대통령이 발탁한 비서관이나 장관, 군 장성들이다. 비서관은 문건의 6할이 사실일 것이라고 하고, 장관은 대통령이 주무장관의 말 보다 비선이나 측근의 말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폭로했으며, 군 장성들은 군 요직에 박 회장 육사동기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는 데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명확한 해명 보다는 ‘호사가들의 입방아’ 내지는 정치 공세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문건 파동이 던지는 메시지에 겸허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2.7%가 비선 개입을 믿고있는 판국에 무조건 아니라고만 하니 국정수행 지지도가 42%까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같은 수치는 어쩌면 문건의 진위 여부 보다 문건 파동을 대하는 대통령의 안이한 현실인식을 탓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측근 관리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인사 및 국정운영 시스템이 폐쇄적 이지 않았는지, 야당과의 소통이 일방적이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국민 앞에 진솔한 모습을 보일 때 문건 파동의 출구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