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재단 모네·미첼 2인전

퐁피두 센터 앨리스 닐 개인전 등

국공립미술관 비롯 사립재단도 대형기획전

파리 찾은 컬렉터 어필

[헤럴드경제(파리)=이한빛 기자] 올해 처음 열린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Paris + par Art Basel·이하 파리 플러스)의 최대 강점은 장소가 ‘파리’라는 데 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문화권력과 경제권력이 미국으로 넘어간 이래 파리는 20세기부터 점령해 온 예술 수도의 위상을 뉴욕에 넘겨줘야했다. 제임스 머독이 끌고 온 아트바젤은 파리가 수백년 문화예술적 자산이 쌓인,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도시임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미술관과 사립 재단들은 대규모 기획전으로 컬렉터를 맞이했다.

루이비통 재단은 클로드 모네와 조안 미첼의 대규모 2인전을 연다. 사진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사진=헤럴드DB]
루이비통 재단은 클로드 모네와 조안 미첼의 대규모 2인전을 연다. 사진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사진=헤럴드DB]
조안 미첼 [사진=헤럴드DB]
조안 미첼 [사진=헤럴드DB]

▶ 루이비통재단, 모네와 미첼…영혼의 대화 = 루이비통 재단은 클로드 모네(1840-1926)와 조안 미첼(1925-1992)의 대규모 2인전을 준비했다. 인상파 대가인 모네와 미국 추상표현주의 대표작가 미첼은 실제로 만난적이 한 번도 없는 작가들이다. 미첼이 태어나고 1년 뒤 모네가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서 두 작품을 나란히 보면, 작업을 통해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모네의 후기작과 미첼의 작업 중 베테유에서 그려진 작품을 주로 병치한다. 연못과 연꽃을 주로 그린 후기작은 모네가 예술적 성숙이 극에 달한 말년의 필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다 프랑스 베테유로 옮긴 미첼은 모네가 살았던 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두 작가는 똑같이 색(color)에 집착한다. 모네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세계에, 미첼은 감정의 몰입을 색으로 풀어낸다. 이들은 두 세대 가까운 차이가 나지만, 작업이 스타일적으로 무척이나 유사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클로드 모네 [사진=헤럴드DB]
클로드 모네 [사진=헤럴드DB]
조안 미첼 [사진=헤럴드DB]
조안 미첼 [사진=헤럴드DB]

병치된 작업은 서로를 자극하고 상승시키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네와 미첼은 잊으라’고 말한다. 미첼의 그림 옆에 놓인 모네의 연못은 부드럽고 평온하지 않다.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감이 캔버스를 점령했다. 그런가하면 미첼의 색은 휘몰아치듯 격정적이지만은 않다. 파랑, 노랑, 초록이 빨강, 핑크, 연보라와 섞이지만 하나 하나의 존재감이 읽힌다. 마치 연인과의 이별이 슬픔 하나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후회와 아픔, 안도, 상실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감정이 뭉쳐져 있는 것 처럼.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모네의 수련과(1917~19)과 미첼의 강(1987)이 나란히 놓인 7번 전시장이다. 잔물결이 햇볕에 반사돼 반짝이는 윤슬이 넘쳐나는 색의 움직임 사이 정점을 찍는다.

60점이 넘는 작품으로 5개 층을 가득 채운 이번 전시는 루이비통 재단,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볼티모어현대미술관, 파리 마모르탕 모네 미술관 등 다수 기관 협력의 결과물이다. 두 거장의 대담한 '대화'는 당분간 세기의 2인전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앨리스 닐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헤럴드DB]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앨리스 닐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헤럴드DB]
퐁피두 센터, 앨리스 닐 개인전 [사진=헤럴드DB]
퐁피두 센터, 앨리스 닐 개인전 [사진=헤럴드DB]

▶ 우리시대의 초상 앨리스 닐= 퐁피두 센터에서는 미국 초상화가 앨리스 닐(1900-1984)의 개인전이 열린다. 작가는 생전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20세기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말년까지 주요 작품을 망라한다. 회화를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닐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닐이 그렸던 대상은 주로 친구, 연인, 이웃들이다. 예술가도 있고 시인, 평론가도 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앤디워홀의 초상은 팝아트 작가로 세기의 인기를 누린 거장의 모습이 아닌 그의 감정적 이면을 잘 드러낸 것으로 유명하다. 워홀은 피해망상 환자에게 총을 맞아 5시간의 수술을 거쳤고, 겨우 살아났지만 수술보호대를 차고 지내야했다. 상반신 탈의한 초상은 수술자국과 그로인해 무너져버린 신체를 가감없이 묘사하며 힘없는 개인인 워홀의 자아를 잡아낸다.

이번 전시의 초점은 닐이 그린 유명인에 있지 않다. 푸에르 토리코에서 넘어온 이민자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칸과 흑인들, 아이를 키우느라 악전고투하는 엄마들이 주인공이다. 주변인과 소수자에 대한 시선은 워홀을 꿰뚫어보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페미니스트이자 공산주의 동조자로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미술관측은 "앨리스 닐 덕분에 회화는 진실을 향한 탐구이자 정치적 행동이 됐다"고 설명한다.


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