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돌 기념공연 ‘레베랑스’

부상·좌절 딛고 무용수·감독으로

“20대엔 운동을 거의 안 했고, 30대엔 30분 정도 운동을 했어요.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매해 30분씩 운동량을 늘렸고,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3시간 30분을 운동해야 토슈즈(toeshoes)를 신을 수 있게 됐어요.”

마흔다섯의 발레리나는 무대에 서기 위해 매일 새벽 집을 나선다. 1시간 30분을 걸으며 심폐 상태를 확인하고, 우아한 아치형의 발과 선을 만들기 위해 같은 노력을 반복한다. 올해로 무대에 선지 25주년, 한국 발레를 대중의 곁으로 끌어온 발레리나 김주원이다.

최근 만난 그는 “발레는 젊음의 예술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는데, 40대가 된 지금 감정적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주원이 다음 달 9~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25주년 기념공연 ‘레베랑스’를 연다.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르는 이 공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 사례를 기록, 현재 추가 오픈까지 고려 중이다.

김주원은 “어떤 사람에게 ‘25’라는 숫자는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발레리나로서 25년은 특별한 숫자”라며 “마흔다섯에 춤을 추는 발레리나는 저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매번 올렸던 작품이 이별 작품이 되고 있어요. 발레리나에게 노화와 몸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걸 인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진부할지라도 모든 무대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이번 공연의 제목인 ‘레베랑스’는 프랑스어로 ‘존경’이라는 뜻으로, 발레 무용수가 공연 후 커튼콜에서 관객을 향해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동작을 의미한다.

그는 “발레는 한 작품 안에서 수십 번의 인사를 한다”며 “모든 레베랑스는 항상 관객의 박수와 함께 하고, 제겐 그렇게 인사하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박수가 나를 얼마나 깊이 있고, 좋은 예술가로 만드는 원동력을 줬는지 느끼게 됐다. 제 인생을 함께 한 분들, 의미있는 분들께 레베랑스를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1998년부터 15년간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사랑받고, 2012년 발레단을 떠나 다양한 무대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뮤지컬, 연극에도 참여했고, 예술감독이자 발레리나로 역량을 발휘하며 발레계에 굵직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내 삶에서 발레를 빼고 김주원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춤이 곧 김주원”이라고 말했다.

지난 25년에 영광스런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발레리나로서 무수히 많은 실패와 고민을 반복했고, 국립발레단 퇴단 이후인 2017년엔 큰 부상도 찾아왔다.

“디스크가 터지면서 하반신 마비처럼 한 달 정도 병원에 누워 생활한 적이 있어요. 춤을 그만 둬야 했고, 모두가 일상생활도 힘들 거라 했어요. 지금 다시 춤을 춘 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부상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오랜 시간 재활을 하며 겪은 감정의 변화, 시선의 변화는 이후 작품으로 담기는 계기가 됐다. “주변을 둘러보고, 많은 것을 품고 이해해야겠구나 싶었더라고요. 작품 안에서도 인연,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기게 됐어요.”

김주원은 스스로를 “욕심쟁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너무나 예민하고 강박이 심한 아이였는데 발레 때문에 살 수 있었다”며 “춤추는게 행복해서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너무 사랑하면 미움도 크다고 하잖아요. 거울을 보며 왜 이 체격으로 발레를 선택했을까. 35년간 췄는데 왜 아직도 안 될까 매순간 좌절하기도 해요. 지금도 춤 때문에 너무나 행복하고 살 수 있는데, 춤 때문에 죽고 싶을 때도 있어요. 매번 행복하진 않고, 힘들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사랑의 크기가 너무 크고 제게 주는 행복이 너무 커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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