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옹호 vs 낙태 금지’ 시민 단체 잇따라 성명…시위 이어져

민주, 연방 차원 낙태권 보장 입법 카드 꺼내…공화 반대로 통과 어려울 듯

11월 중간선거 쟁점으로…‘지지율 답보’ 바이든·민주 반전 카드로 여겨

대법원장 “판결문 사전 유출, 극악무도”…조사 지시

낙태권 확대 국제 사회 움직임에 역행

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초안을 작성한 연방대법원에 대해 비판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내 몸, 내 선택권. 이는 단순한 사실(MY BODY, MY CHOICE. It's Simple)’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가두 행진을 벌였다. [AP]
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초안을 작성한 연방대법원에 대해 비판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내 몸, 내 선택권. 이는 단순한 사실(MY BODY, MY CHOICE. It's Simple)’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가두 행진을 벌였다. [AP]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념적 성향의 척도로 여겨지는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보도에 미국 사회가 완전히 둘로 쪼개진 모양새다.

찬반 진영 간의 충돌이 곧장 현실화됐고, 각각 진보·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민주당과 공화당도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계산하며 논쟁에 참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헌법적 권리 끝내려는 끔찍한 일” vs “대법 용기에 박수”=시민단체들의 반응은 확연히 엇갈렸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미국가족계획연맹은 성명을 내고 “끔찍하고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이 낙태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끝내려 준비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연방대법원이 있는 워싱턴DC를 비롯해 뉴욕·조지아·텍사스주(州) 등 미 전역에선 낙태권을 옹호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 모여든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합법적 낙태권을 유지하라(KEEP ABORTION LEGAL)’·‘우리 몸에 대한 금지를 철회하라(BANS OFF OUR BODIES)’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여성의 낙태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내용이 담긴 다수 의견서 초안이 작성된 것에 대해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 모여든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합법적 낙태권을 유지하라(KEEP ABORTION LEGAL)’·‘우리 몸에 대한 금지를 철회하라(BANS OFF OUR BODIES)’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여성의 낙태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하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내용이 담긴 다수 의견서 초안이 작성된 것에 대해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 구트마허연구소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가 무효화할 경우 미국 50개 주 중에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집계했다. 대부분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우위에 있는 곳들이다.

반면, 낙태 금지 목소리를 내 온 미국생명연합은 “낙태 판례를 폐지하는 대법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대법원이 정치적 동기의 유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이든·민주당, 11월 중간선거 표심 결집 노력=불똥은 정치권으로도 튀었다.

민주당은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 입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 법에 대한 투표는 추상적 행동이 아니라 긴급하고 실질적인 행동”이라며 “여성의 선택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법안은 공화당의 반대로 통과가 어렵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입법 저지 수단인 ‘필리버스터’가 있기 때문이다.

낙태권 논쟁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 표심을 결정할 중요 사안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유권자들이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지지율이 40% 초반대 박스권에 갇혀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서는 중간선거에 앞서 여론전에서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하에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지층 결집을 넘어 중도층 포섭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 앞에서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초안을 작성한 연방대법원에 대해 비판하며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 법안을 입법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날 연설 현장에는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도 함께 자리했다. [EPA]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사당 앞에서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초안을 작성한 연방대법원에 대해 비판하며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 법안을 입법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날 연설 현장에는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도 함께 자리했다. [EPA]

실제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달 24∼28일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54%는 기존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활동가들의 압력에 굴복하는 법원은 결코 사법적 정당성을 심화하지 못하고 이를 약화할 뿐”이라며 대법원이 정치적 반발을 무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초안 형태긴 하지만 판결문이 사전에 유출된 것이 현대 사법 사상 처음 있는 일인 만큼 대법원 역시 발칵 뒤집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일은 법원과 직원에 대한 모욕이자 신뢰를 손상하는 극악무도한 일”이라며 유출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美, 전 세계적 물결에 역행” 지적=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약 50개국에서 낙태를 위한 법적 접근권을 향상하는 조처를 취했다. 가톨릭 인구가 다수인 국가지만 낙태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아르헨티나·콜롬비아·멕시코·아일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대부분 유럽 국가들도 임신 후 일정 시점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초안을 작성한 연방대법원에 대해 비판하며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EPA]
3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州) 애틀랜타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초안을 작성한 연방대법원에 대해 비판하며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EPA]

미국처럼 이미 확립된 낙태권 보장을 되돌리는 나라는 폴란드, 니카라과 등 사례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일부 주는 터키와 튀니지와 같은 중동의 일부 국가보다 더 엄격한 규정을 갖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 13∼44세 미국 여성 중 4000만명 이상이 제한적 낙태권을 가진 주에 거주하고, 이로 인해 노동 참여 및 수입의 감소 등으로 연간 1050억달러(약 133조원)의 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여성정책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전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2019년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정부가 최장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국회의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현재로선 낙태에 관한 규정도, 처벌도 공백 상태라는 뜻이다.


realbig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