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플라스틱은 석유 찌꺼기로 만든 고분자 화합물이다. 분자 구조를 끊어내기만 하면 다시 기름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실제 이미 이같은 방식으로 기름을 만들어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있다. 이젠 굳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재활용을 아예 포기할 만큼 플라스틱은 하찮지 않다. 사실 플라스틱은 유리나 종이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어, 최소한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측면에서는 보다 나은 선택지다. 여러 번 쓰기만 하면 무엇보다 친환경적인 셈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플라스틱은 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으로 해법을 고민한다. 미생물을 통해 재활용 효율을 향상시키는 기업 ‘리플라’가 대표적이다.
최근 리플라를 이끄는 서동은(24) 대표를 직접 만났다. 그는 “재활용 공장 사장님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한다. 재활용이 돈 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플라스틱은 지금보다 더 잘 재활용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리플라의 솔루션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재활용 사업자 분들이 보다 비싼 가격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팔 수 있도록, 단일 재질의 순도를 향상시켜주는 미생물 탱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도 그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요, 재활용되려면 그 종류별로 완벽히 나뉘어 있어야 해요. 사람의 수작업뿐만 아니라 레이저 분류, 인공지능(AI) 인식, 세척 등 여러 분류 절차를 거치죠. 그런데 공장 사장님들을 만나 보면, 현재 기술로는 몇 차례 절차를 반복해도 순도를 98%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힘들다고 하세요. 순도 98%짜리 재활용 플라스틱은 매입가가 새 플라스틱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2%의 불순 플라스틱만 따로 골라낼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해법은 편식하는 미생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00 중 98의 폴리프로필렌(PP)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2만큼의 폴리에틸렌(PE)만 분해하는 미생물 탱크에 집어넣었다가 건지는 거죠. 결과적으로 순도 100% PP 재활용 플라스틱을 얻도록요.”
서 대표는 이같은 아이디어를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6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떠올렸다. 재활용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해 보라는 문제를 냈던 ‘전국과학대회’가 계기였다. 이듬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입학해 생명공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사업을 빨리 현실화하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졸업도 하기 전에, ‘학생’ 신분으로 20여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다.
-재활용 공장이 리플라의 고객인 셈이네요. 공장은 리플라 제품을 구매했을 때 수익을 얼마나 더 낼 수 있나요?
“순도를 100% 가까이 끌어올리면 가격이 새 플라스틱의 80% 수준으로 높아집니다. 쓰레기들의 색깔이 각각 다르고 출처도 모르니 아무래도 새 플라스틱만큼 받지는 못하는데요. 그래도 98%짜리와 비교하면 50% 이상 더 받는 거죠.
2018년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매일 30t가량을 처리하는 PP 분리공장의 경우 연매출이 약 73억원에서 110억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에,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매립하고 소각하기 위해 치르던 비용까지 줄어들 테니, 총 46억원의 부가 이익을 내실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어요. 탱크 관리비용 등을 감안하더라도, 1년이면 투자 비용을 회수하실 수 있는 구조입니다.”
리플라의 잠재 고객인 분리 공장은 전국적으로 약 2000개. 그 중 하루에 30t 이상 처리하는 공장은 500여개이고, 150t 이상 처리해 연 매출이 500억원 가까이 되는 공장만 세어도 200개에 달한다. 그 중 25개 공장에 탱크 2대씩만 판매해도 약 1500억원의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서 대표는 자신했다.
-아직 상용화는 되지 않았는데요. 어떤 과제가 남아있나요?
“사실 특정 플라스틱을 편식하는 미생물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핵심은 미생물에게 제공하는 환경입니다. 어떤 먹이를 어떻게 줄지, 온도와 습도와 산소량은 어떻게 유지해줄지 등이죠. 올해는 환경을 최적화하는 연구를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탱크의 규모를 점점 더 키우면서 실수를 바로잡은 다음, 2024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려고 합니다.”
-플라스틱을 분해할 때에도 탄소가 배출될 테니, 완전히 친환경적이라고만 보기엔 힘들지 않나요?
“분해하는 만큼 탄소가 새로 배출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소각장으로 보내져 태워졌을 플라스틱이 순도 100%로 소재로 바뀌어 재활용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게 되죠. 분리배출된 플라스틱 중 실제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뀌는 비율은 약 13%인데요. 이걸 약 30%까지 끌어올리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그러면 저희 탱크를 도입한 공장은 탄소 배출량을 기존보다 18%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정부도 재활용 효율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다 보니, 사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규제가 변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나요?
“지금 환경부는 기업들한테 재활용을 위한 환경분담금을 걷어서,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라는 곳을 통해 재활용 업체들에게 나눠주고 있는데요. 기존에는 재활용의 결과물을 따지지 않고 그냥 무게 기준으로만 지원금을 나눠주고 있었어요. 그런 빈틈을 이용해서, 제대로 선별도 안 해놓고 무게만 무겁게 달아 지원금 타 먹는 불량 업체들이 많았죠.
그런데 정부가 앞으로는 품질에 따라서 최대 8배 차등을 두겠다고 했거든요. 예컨대 페트병을 재활용할 때, 수분이 많이 포함돼있고 이물질이 많으면 ㎏당 10원만 주고, 순도가 높으면 80원을 주는 거죠. 이 제도를 올해부터 시행한다고 했는데, 일부 지자체에선 이미 시작을 했어요.”
즉 업계 스스로 재활용 품질을 높이도록 장려하고, 불량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제도가 올해부터 시행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시행되면 리플라의 미생물 탱크처럼 재활용 품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솔루션이 보다 많이 공급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기대하고 있는 건, 재활용 플라스틱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기업이 증명하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환경분담금을 줄여주는 정책을 환경부가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잘 디자인된다면, 재활용 공장에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재활용 플라스틱의 가격이 새 플라스틱보다 높게 팔린 사례도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수요가 갑자기 몰려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었겠지만, 재활용의 가치를 알아가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우리 국민들이 재활용을 지금보다 철저히 하고, 기업들도 플라스틱 제품의 소재를 통일하기 시작한다면? 리플라의 솔루션은 그 효용을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요?
“극단적으로, 오늘부터 당장 모든 시민들이 플라스틱을 안 쓴다고 해볼까요? 저희 고객인 재활용 공장이 필요 없어지는 거죠. 그래도 저희는 기댈 구석이 있습니다. 이미 생성된 플라스틱이 전 세계적으로 83억t 정도라고 하는데요. 그 중 59억t은 버려진 이후 제대로 처리가 안 된 플라스틱이라고 해요. 그 중에 5분의1은 저희가 지금 주력하고 있는 PP소재이고요. 그런 처리 곤란 폐기물을 분해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하거나 전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같은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아직 상용화를 2년 넘게 앞두고 있음에도 리플라는 굴지의 투자자들로부터 잇따라 러브콜을 받았다. 딥테크 투자 전문 엑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를 비롯해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인라이트벤처스, 연세대학교기술지주, 대경기술지주 등이 리플라에 투자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투자 라운드가 마무리되면 리플라는 약 11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요?
“재활용 산업을 조금 더 산업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쓰레기를 볼 때, 당장 눈앞에서 치워야 할 폐기물로만 보는 것 같아요. 단순히 태워버리거나 열처리하는 솔루션에 돈이 몰리는 것만 봐도 그렇죠. 그런데 시선을 조금만 바꿔보면, 재활용은 전에 없던 새로운 소재 시장을 열 수도 있는 영역이거든요. 재활용 사업자분들 모두 돈을 많이 벌고, 더이상 저희 제품이 필요 없어질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