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화순-광주의 접경지 반경 12㎞이내에 국가 명승이 4개나 있다. 이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소쇄원·식영정·환벽당·물염정(화순적벽)이다. 자연친화적 수간모옥과 정자에서 공동체 상생과 호국, 위민정치의 대안을 토론하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철학살롱들이다.
모두 제주양씨, 영일정씨, 울산김씨, 홍주송씨 등 지역공동체 허브인 종가가 주도했다. 조광조의 천재소년 제자 ‘소쇄처사’ 양산보, 관동별곡의 정철, 영호남 제자를 두루 양성한 김윤제, 면앙정가의 송순이 주도한 사상과 공익캠페인의 중심지였다.
소쇄원은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의 버킷리스트인데, 1999년 방한 때 ‘꼭 가야지’ 했다가 바쁜 일정 때문에 들르지 못했던 곳, 일본 에도시대 정원문화에 영향을 준 동아시아 정원의 대표작이다. 문묘에 배향된 현자 김인후와 송순, 김윤제, 주인장 양산보 등이 광풍각 위편 제월당에서 토론하면, ‘선비 의병’들의 통합스승 격인 양응정, 삼촌뻘 퇴계와 편지로 철학토론과 우정을 나눴던 기대승, 선비 출신 60대 의병대장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광풍각, 애양단 근처를 배회하며 선배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거동했고, 나중엔 그들과 그들의 후예가 차례로 이 살롱의 주인공이 됐다. 정원의 아름다움, 전각에 담아낸 세심한 배려, 선비들의 충절과 자연철학사상 등이 조화로운 곳이다.
담양군은 소쇄원의 가치, 덩치를 74배로 확대해 거대한 국민휴식터 ‘죽녹원’을 만들었다.
함양 일두고택은 조선 대표 유학자 정여창의 생가로, 두드러진 특징은 사랑채 누마루 앞에 조성된 삼봉형 석가산(石假山)이다. 그 옆에 7m의 높이의 소나무와 산철쭉, 회양목, 범부채 등 식생이 어우러져 있다.
미학과 전통가치를 품고 있는 정원형 고택은 ▷경주 최부자댁 ▷거창 동계종택 ▷상주 우복종택 ▷문경 장수황씨 종택 ▷함양 노참판댁 고가 ▷장흥 무계고택 ▷나주 계은고택 ▷남원 몽심재 고택 ▷영광 매간당 고택 ▷정읍 김명관 고택 ▷익산 조해영 가옥 등 무수히 많다.
종가에서 국민이 K-컬처를 흡입하며 놀기도 하는데, ▷서울 한용운의 심우장 ▷세종 홍판서댁 ▷강릉 선교장 ▷계룡 사계고택 ▷남원 몽심재 ▷경주 독락당 ▷영양 석계고택 ▷보성 이진래 고택 ▷함양 일두고택 ▷거창 동계종택 ▷제주-추사적거지 등에서 고택활용사업이 진행된다.
해남윤씨 녹우당의 5탕5찜 내림음식, 유럽에 진출한 장흥고씨 종가의 발효식품, 퇴계가 매화, 연화, 국화, 대, 소나무와 자기자신을 여섯 벗(六友)으로 삼았다는 스토리에 맞춰 치암고택이 전승하는 ‘육우원 다과’, 정재종택의 가양주, 송화주 등 음식문화도 종가를 중심으로 꽃피었다. 그 속에 매간당의 효심, 운조루 뒤주의 개방이 보여주는 나눔의 마음, 식구보다 더 많은 명절음식을 만들어 여분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 상생의 정신이 함께 배어 있다. 원주이씨 종가의 이시헌 백운동별서정원 동주는 스승 정약용과의 의리를 백운옥판차로 이었다.
며느리 송덕봉의 능력을 키워준 문화류씨, 족보에 딸들의 족적도 세세히 기록한 해남윤씨의 양성평등 문화도 종가에서 꽃피었다. 반상의 구분 없이 주민 상생을 도모하던 장흥 방촌리, 영암 영보촌 대동계는 각각 위씨, 최씨 종가가 주도했다.
‘한국의 종가’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된다고 한다. 이 K-컬처 종합예술품의 가치가 이제라도 지구촌에 알려진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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