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ㆍ배우ㆍ작가에 연출까지…
장르ㆍ경계 넘나든 협업과 도전
판소리라는 기반 있어 흔들리지 않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슴 벅차게 푸르른 날은 그대가 오는 날, 눈부신 천해의 옷을 입고 하얀 아라리에 춤을 춘다” (‘백의 아리랑’ 중)
7000만 년 전 한반도에 생겨난 안산 대부 광산 퇴적암층. 새하얀 한복을 입은 소리꾼 이봉근이 ‘아리랑’의 선율을 이어갔다. 중생대 지질층을 배경 삼아 부채를 펼치고, 판소리와 대중음악의 창법을 유연하게 넘나든다. 애틋한 아리랑에 희망 가득한 내일이 담겼다. 곡의 가사는 이봉근이 직접 썼다. “현대적이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백의민족인 우리의 정서를 담은” 가사다.
소리꾼 이봉근은 가을이 무르익던 날 이곳에서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함께 ‘백의 아리랑’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명소와 전통음악의 만나는 ‘음악유랑’ 사업의 일환이다. 누구나 다 아는 ‘아리랑’을 이곳에서 부른 데에는 어수선한 국제 정서를 바라본 이봉근의 소신이 담겼다. 최근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만난 이봉근은 “동북공정이 심해지는 요즘 아리랑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소리꾼에게 ‘아리랑’은 익숙하고 특별하다. 무수히 많은 변주가 있었던 만큼 새로운 시도가 쉽지 않은 곡이기도 하다. “아리랑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전통 콘텐츠가 들어가야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많은 사람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아리랑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백의 아리랑’엔 이봉근의 강점과 가치관이 담겼다. 음악에선 “전통의 발성과 대중음악의 발성”을 아우르고, 의주부터 서울까지 남북을 잇는 “우리나라의 명소를 훑어” 내려온다. “기다림과 설렘, 그리움의 정서를 담아 하나의 민족을 보여주자는 느낌으로 그린 아리랑이에요.”
그는 대중적인 소리꾼이다. 영화 ‘소리꾼’의 주연 배우이자, 음악 예능 ‘불후의 명곡’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통해 잘 알려졌다. ‘전통음악계의 BTS’로도 불리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통예술과 다양한 장르, 매체를 넘나드는 활동으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사는 ‘소리꾼’만으로 한정할 순 없다. 소리꾼이자 배우이며, 대본을 쓰는 작가이자, 곧 연출가로도 ‘데뷔’할 계획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도전의 연속’이다. 이봉근은 “재미없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 아니”라며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도전하는 것을 즐거워 한다”고 말했다.
‘도전의 원동력’엔 소리꾼으로서의 ‘깊은 정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판소리라는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가지고 있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배도 닻이 내려 있어야 흔들리지 않잖아요. ‘판소리’라는 뿌리가 단단하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도 중심으로 찾아갈 수 있고,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리의 길’로 접어든 것은 그리 이르지 않다. 중학생 때였다.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한지 3개월 만에 남원 국악고에 입학했다. 남들은 신동이라 했지만, 스스로는 ‘재능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서예를 하는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타고난 끈기’”가 소리꾼으로 집중할 수 있는 집요함으로 이어졌다. 고(故) 성창순, 안숙선, 김일구 등 당대 명창에게 사사받으며 소리꾼의 길을 걸었다. “선생님 복이 많았어요.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하시는 선생님들께 배우며 생각이 유연해졌고, 그 안에서 저만의 스타일을 잡아갈 수 있었어요.”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용감한 도전’을 처음 시도한 것은 2002년이었다. 지금이야 전통음악과 타장르의 협업이 흔해졌다지만, 이봉근이 처음 외도(?)를 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2000년대 초반 쯤엔 역린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그 정도였어요. 소리하는 사람이 대중음악 창법을 내면 큰일이 나던 시기였죠.” 국악 뮤지컬 단체인 타로의 창단 멤버로 시작으로 앙상블 시나위, 적벽 등의 활동으로 이봉근의 이름은 국악계에서도, 대중음악계에서도 서서히 알려지게 됐다.
“사실 타장르와의 협업엔 어려움이 많아요. 크로스오버 자체가 이질적일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수박 겉 핥기로 보여지면 안 된다는 점이 어려워요.” 이봉근이 학구적인 소리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통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깨부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다른 장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서예요. 전통과 다른 장르가 만나도 우리가 가진 고유의 정서가 깨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제 나이에 맞는 ‘창법’을 찾기 위해 지금도 그것을 바꿔가고 있다. “향후 10년을 흔들리지 않고 가기 위해 제게 맞는 창법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접어들었어요. 어릴 땐 왜 젊은 나이에 어르신의 목소리를 내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더 전통의 발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전통에 기반한 발성 안에서 어떤 발성으로 재즈, 대중음악을 할 지에 시선을 두고 있어요.”
지난해 영화 ‘소리꾼’을 계기로 ‘이봉근의 유니버스’는 보다 확장됐다. 음악을 넘어 ‘총체적 예술’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그는 자신의 지금을 “나이를 먹고 있는 소리꾼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장르를 국한하지 않고 여러 방법들을 선택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음악이건, 연극이건, 작가이건 도전은 계속 된다. 내년엔 직접 대본을 쓴 ‘슈만 이상’이라는 창작 뮤지컬로 관객과 만난다. “그래도 가장 재밌는 건 무대에서 노래하는 거예요. 최근엔 글을 쓰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에 빠졌어요. 눈치 보지 않고 쓴 거친 글들을, 매끄럽게 사포질 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에요.” 이봉근의 세상도 그의 글처럼 유려하게 다듬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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