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5인 의견으로 각하
“정부, 지속적 외교조치로 의무 이행”
“‘위안부’·원폭 피해자와 배상문제 달라”
“조력 받지 못한 안타까운 역사는 인정”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돼, 종전 후 국제전범재판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이른바 ‘조선인 전범’과 유족들이 정부의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제기한 헌법소원이 각하됐다.
헌법재판소는 31일 고(故) 이학래 동진회 회장 등이 정부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 선고기일에서 재판관 5(각하)대 4(위헌) 의견으로 각하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 청구 7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고 이 회장 등은 1955년 4월 ‘조선인 전범’으로 불리는 한국인 BC급 전범들로 구성된 ‘동진회’라는 모임을 조직했다. 이 회장 등은 2014년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유로 한국인 BC급 전범 처리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재판관들은 국제전범재판의 처벌로 인한 피해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두 가지로 나눠 고 이 회장 등이 주장한 피해를 살폈다. 재판관들은 국제전범재판의 처벌로 인한 피해는 한일 청구권 협정과 무관해 정부가 분쟁 해결에 나서야 할 구체적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지속적인 외교적 조치를 통해 그 작위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남석 헌재소장, 이선애·이영진·문형배 재판관은 “국내외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국제전범재판소의 국제법적 지위와 판결의 효력을 존중해야 한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이들은 국제전범재판 판결의 처벌에 따른 피해 보상 문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원폭 피해자 등이 가지는 배상청구권 문제와 동일한 범주로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외교적 재량을 고려하면, 정부가 그동안 외교적 경로를 통해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해결 및 보상 등을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이상, 정부는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따른 자신의 작위의무를 불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들은 “일제에 의해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 돼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다가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돼 제대로 된 조력을 받지 못하고 처벌을 받은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종석 재판관은 “헌법 제10조, 제2조 제2항의 규정이나 헌법 전문으로부터, 우리 정부가 청구인들에 대해 부담하는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이 사건 협정 제3조의 내용을 살펴봐도 정부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구체적 작위의무가 도출된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반면, 이석태·이은애·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복구에 정부가 나서지 않은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봤다. 이들은 “일제의 불법적인 강제동원으로 인하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며 “아울러 현재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이미 사망한 사정을 고려하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경우 한국인 BC급 전범들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청구권을 실현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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