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전주최씨 연촌종가
전남 영암 백룡산 형제봉 자락의 영보촌은 여민동락의 향약 동계와 향촌문화가 꽃 핀 곳이다. 공동체문화는 호국과 상생으로 이어졌다. 평생을 공직에 투신하다 은퇴후 상생 공동체의 기틀을 잡은 전주최씨 연촌(존양) 최덕지(1384~1455)의 손길이 세심하게 닿은 마을이다.
최덕지는 조선개국공인 최담(1346~1434, 전주한벽당 건립)의 아들이다. 사헌부감찰, 김제군수, 남원부사 등을 역임했다. 흉년에 고통받는 백성에게 구휼미를 베풀기 위해 논공법이라는 세법을 상소해 세종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관직을 그만두고 처가인 영암 영보촌에 낙향했는데, 문종이 다시 불러 예문관직제학에 올랐다.
67세되던 1451년 연로함을 이유로 사임하자 사육신 등 당대 석학 28인이 노량진나루터에 나와 시부(詩賦)를 지어 칭송하며 송별했다.
최덕지와 그 사위 신후경(거창신씨)이 지은 영보정은 최-신 두 집안이 주도한 영보촌 동계향약 집회소이다. 신희남의 문하생이던 한석봉이 현판을 썼다고 알려진다. 역사성과 조형미, 기술성 등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2054호로 지정됐다.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은 전신을 그린 초본의 특성과 조선 전기의 초상화 화풍 및 복식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보물 제594호로 지정됐다.
과거급제해 출사하고도 조기에 낙향해 영보촌 공동체에 헌신한 최정(1568~1639)은 최덕지 영정 단장, 존양사 건립, 영보정 중건, 최덕지 시문을 모은 ‘난후문고수록지’ 간행, 향약동계의 활성화 등 문화유산 보존·계승에 큰 공을 쌓았다.
최씨의 합경재, 신씨 송양사에 영보 동계자료 8책이 전해지고 있다. 동계의 규약과 운영은 시대에 맞게, 분쟁소지가 없게 최정 등이 개정했다.
친족들 중심의 동족계가 유지되면서 전체 동민을 포괄하는 동약으로 발전한다. 동족계가 10석, 동약에서 20석을 출연, 거액을 펀딩해 호국, 상생, 구휼등에 활용했다.
최덕지가 강학했던 장소인 존양루엔 류성원, 이개, 하위지,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김종서 등 28인의 노량진 나루터 송별시가 걸려있다.
녹동서원(전신은 존양사)에는 최덕지의 연촌유고, 최충성의 산당집, 김수항의 문곡집, 임억령의 석천집 등 목판 1329판을 보관하다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따로 판각을 세워 보존했다. 일제땐 의병도 많이 배출했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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