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정희(부산) 기자]한국경마 최고 권위를 가진 ‘대통령배(GI)’에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우승한 희대의 명마 ‘당대불패’. ‘선박ㆍ발전용 공기압축기’ 분야에서 단연 국내 최고의 기술을 인정받는 범한산업 정영식(54세) 대표. 말과 마주의 관계이기도 한 이들은 꽤나 닮은 꼴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경마계의 ‘잭팟’이라고 하며 부러워 한다. 2900만원에 구입한 망아지가 30억원에 달하는 상금을 벌어들였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면에는 태어난 목장이 어려워지면서 젖도 떼지 못한채 6개월만에 팔려나가야 했던 어린 ‘당대불패’와 31세의 젊은 나이에 경쟁으로 가득한 산업계에서 홀로서기를 해야했던 김영식 대표의 혹독한 삶이 깔려있었다.
이들의 첫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다가왔다. 지난 2008년 가깝게 지내던 제주도의 한 목장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고 생후 6개월 된 망아지를 어쩔 수 없이 2900만원에 구입했다. 아직 젖도 떼지않은 어린 말이었고 비쩍 마른 체형에 당최 경주마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정 대표는 경주마로서 기대보다는 어리고 불쌍한 망아지를 잘 돌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극진히 보살폈다.
하지만 어린 ‘당대불패’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평소 수분 섭취가 적어 문제가 되는 일반적인 말들과는 달리 먹이로 주어진 볏단을 직접 물에 담가 먹는가 하면 자신을 보살피던 조교사와 마주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루가 다르게 튼튼하게 자라갔다.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면서 키도 크고 든든한 체형을 가진 명마의 모습을 서서히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3세마 경주에서 뛰게된 ‘당대불패’는 자신을 아껴준 이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월등한 기량차이로 우승행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4년여 동안 ‘신기록 제조기’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32번의 경주에 나서 19승을 거뒀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0승이 대상경주로 국내 최고 기록이다.
대통령배 3년 연속 우승이라는 신화를 쓰면서 수득상금도 29억8500만원을 벌어 한국경마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수익률이 90배에 달한다. 정 대표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말들 중 당대불패가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며 “이 복을 주변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해 기부를 결심했다”며 흡족해했다.
‘당대불패’는 탁월한 성적과 함께 여러 차례 우리 사회에 화제와 감동을 안겼다. ‘경주마 기부왕’으로 불린 선행 릴레이가 대표적이다. 마주 정영식 씨는 ‘당대불패’의 이름으로 2011년부터 3년간 각각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의 의족 등 장비 구입에 쓰여 졌다. ‘당대불패’의 기부로 스포츠 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던 장애인 선수 두 명은 은퇴식에 참가해 ‘은인’의 새출발을 축하하기도 했다.
정영식 대표는 당대불패를 보면서 한국의 중소기업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좋은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무시당하던 당대불패의 신세는 어려운 대외환경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중첩된다. 최고의 말들과 경쟁에서 끝내 승리를 거두는 과정을 보면서 불굴의 정신력으로 대기업에 도전하는 중소기업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정 사장은 1960년 의령군 신반의 형제 많은 보통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마산으로 ‘유학’했다. 동중학교와 마산중앙고를 졸업한 이후, 집안사정을 감안해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한국해양대학교로 진학했다. 박용(舶用)기계학과를 졸업하고 선박관련 엔지니어링회사에 취업했던 정 대표는 1990년 창업에 나섰다. 갓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선박이나 원자력 발전플랜트처럼 큰 물체는 배터리 힘으로 구동시킬 수 없어 ‘공기압축기(air compressor)’란 장치를 쓴다. 이 장치는 공기 압축으로 압력을 높여 동력을 살려주는 것으로 정 대표가 1993년 국산화하기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정 대표는 외국 공기압축기를 구해 분해ㆍ조립을 반복하면서 원리를 배워 나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1993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편견과 의심으로 가득찬 시장으로의 진입은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회사사정도 어려워져 갖고 있던 집과 차를 팔고 상당한 빚까지 지게됐다.
정 대표는 이러한 어려움을 정직함과 뚝심으로 정면승부로 이어갔다. 범한산업은 마침내 매출 10조원대의 다국적기업인 아틀라스콥코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2010년 말부터 제품을 본격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범한산업 공기압축기의 독보적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유럽ㆍ일본 등 기존 제품보다 크기를 줄여 무게가 20~30% 가볍고, 진동ㆍ소음이 최저 수준이다. 또 윤활유 소비량 등 유지비도 평균 20% 적게 든다. 2007년 정부의 ‘세계일류상품’ 인증을 받은 이유다.
이처럼 당대불패와 정 대표는 역경을 이겨내고 꿋꿋히 성공신화를 써낸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이제는 은퇴 후 제주도에서 생활하는 당대불패를 보기위해 시간만 나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정영식 대표는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는 경마를 사행산업으로 취급하는 편견이 적지않다”면서 “경마는 단순히 베팅만 하는 게임이 아니라 경주마 생산, 유통에서 경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파급력을 지닌 ‘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순전히 재테크의 관점에서 보면 마테크는 증권시장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부상, 병, 대진운 등 위험요인도 많다”면서 “단기간 내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경주 결과에 상관없이 즐기면서 여유를 갖고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