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판결은 어떤 것일까. 변호사들 사이에선 ‘승소판결이 좋은 판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당사자로선 그럴 만하다.
몇년 전, 한 변호사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한 노동사건을 대리한 변호사였다. 대법원에서 산업재해 사건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직후였는데, 대법원이 아닌 1·2심 판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1심 판사는 이 변호사가 대리한 당사자에게 패소 판결을 했었다. 비록 결과적으로 소송에서 지긴 했지만, 단독판사가 인정하기 부담스러운 근로계약 법리를 진지하게 검토해줬고 이로 인해 항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장을 향해서도 새로운 법리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매끄럽게 재판을 진행해줬다고 칭찬했다.
처음엔 변호사가 재판부와 사적인 인연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변호사는 “판사 중에는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심리조차 하지 않는 분이 있고, 1·2심에서 심리되지 않는 것은 대법원에서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점은 변호사에게 좌절감을 준다”는 말도 남겼다. 지금도 두 판사는 일선에서 재판업무를 맡고 있다. 특히 항소심 재판장은 법원 내에서도 이론이 없을 정도로 법리에 해박하고 유능한 판사다. 모두가 대법관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일한 경력이 흠이 돼 지명을 받지 못했다. ‘명문대 출신 50대 남성 부장판사’라는 조건은 오히려 손해가 됐다.
대법원은 1년에 4만건이 넘는 사건을 심리한다. 대법관은 사건을 빠르게 검토하고 정확한 법리를 짚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을 뽑아 전원합의체로 회부할 줄 아는 ‘선구안’이 중요하다. 전원합의체 판결이야 말로 대법원이 사회에 전하는 핵심 메시지이고, 업적이다.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빠른 시간에 정확한 법리를 찾아내는 능력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소수자 보호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대법관이 된 인사는 그만큼 ‘좋은 판결’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지명 직후 자신을 ‘재판만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리겠다”는 말도 남겼다. 취임 직후에는 “대법원장도 소수의견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김명수 코트’에서 업적으로 남길 만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떤 것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헌법재판소에서 먼저 위헌결정했고,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판결은 법리를 떠나 2012년 판례에서 구성된 법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김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을 낸 적도 없다.
이제 김 대법원장은 2년 정도의 임기를 남기고 있다. 재판만 한 사람의 진가를 보여주겠다고 했던 호기는 사그라들었고, 마음이 급한 것인지 사법행정 경험이 많은 인사들을 법원행정처로 불러들였다. 남은 임기 동안 어떤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인지 외부에선 알 수 없다. 하지만 본인이 대법원장에 오른 배경을 생각한다면, 전임자 때와 비교해 ‘좋은 판결’을 많이 남겨야 한다. 생각보다 시간은 많지 않다.
jyg9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