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까지 폐 끼치고 싶지않아...
2차사고 위험 수색활동 하지말라”
생전 유지 존중...장례절차 착수
체육훈장 청룡장 추서 건의
“코로나 19로 지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장애인 김홍빈도 할 수 있으니 모두들 힘내십시오!”
지난 18일 오후 8시 58분(이하 한국시간) 장애인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현장에서 김홍빈(57) 대장은 코로나로 힘겨운 국민을 위로하고 용기를 갖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메시지는 결국 국민들을 향해 남긴 마지막 말이 될 공산이 커졌다.
이번 브로드피크(8047m) 등정으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봉우리에 모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그는 19일 하산하던 도중 실종됐다. 24일과 25일 파키스탄 군 헬기 2대와 중국의 구조 헬기 2대로 항공 수색 작업을 펼쳤으나 육안으로 김 대장을 찾아내지 못 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에서도 김 대장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기대했던 항공 수색에서 큰 성과가 없는 가운데 26일 김 대장의 가족들은 큰 결단을 내렸다. 광주시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26일 김 대장 가족(배우자)의 의사를 존중해 수색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김 대장은 브로드피크 등정에 앞서 “내게 사고가 나면 수색 활동에 따른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 지금까지 주위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죽어서까지 주위 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김 대장의 가족들도 그의 유지를 존중해 수색 중단을 결정했다.
일주일 동안 숨 가쁘게 이어졌던 수색 작업은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지만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보여준 불굴의 도전 정신은 후배 산악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됐다.
김 대장은 필생의 위업이었던 히말라야를 완전정복하고 산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가 산악인으로서 걸어온 길은 모두 역사가 됐다.
전남 고흥 출신의 김 대장은 27살이던 1991년 5월22일,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 매킨리(6194m)의 데날리 패스(5700m)에 쳐놓은 텐트 안에 있다가 조난을 당했다. 정신을 잃고 몽환적인 상태로 구조될 때까지 며칠동안 버텼지만 극심한 동상을 입었다. 엉덩이 살을 이식하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결국 열손가락을 모두 잘라내야 했다.
우울감과 좌절감에 빠져 살던 김홍빈은 장애인 동계올림픽 출전을 통해 다시 일어섰다.2002년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해 2006년 가셔브룸2봉부터 14좌 완등을 시작했다. 2007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정은 14좌 완등의 확신을 심었다. 2009년엔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고, 결국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꿈은 가셔브롬2봉 이후 15년만에 이뤄졌다.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대장은 살아서 모든 꿈을 이뤘고, 이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게 됐다. 대책위는 가장 영예로운 방법으로 김홍빈 대장의 장례식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체육 훈장 최고 등급인 청룡장 추서를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조용직 기자
peopl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