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마크, 해방 후 또하나의 기쁨 선사

공사1기 천영성 파일럿 출격 환송 태극기도

소록도 인권탄압 항거 성명서는 문화재 공식등록

서윤복 선수의 보스톤마라톤 우승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윤복 선수의 보스톤마라톤 우승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윤복 금메달 앞면과 뒷면
서윤복 금메달 앞면과 뒷면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해방 직후 우리 국민에게 또하나의 기쁨을 안겨준 서윤복(1923~2017) 선수의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메달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서윤복선수는 1946년 제1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뒤 이듬해 세계 최고 권위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1위는 세계1위임을 보여준 사례이다.

그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대한체육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대한체육회 부회장까지 지내며 후배들을 키워냈다.

서윤복 선수의 우승메달은 1947년 4월 서윤복 선수가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KOREA'(코리아)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달고 국제대회인 '제51회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 후 우승하여 받은 배지 형태의 메달이다.

서윤복- 김구와 함께 찍은 사진(경교장) [국립체육박물관 제공]
서윤복- 김구와 함께 찍은 사진(경교장) [국립체육박물관 제공]

서윤복 선수의 우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미 군정 시기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KOREA'와 우리 민족의 역량을 세계에 알렸던 사건으로 매우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아가 그의 우승은 우리나라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정식회원국으로 승인(1947.6월, 스톡홀름)받고, 이듬해 1948년 런던올림픽과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게 되는 초석을 마련하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이 태극기는 6・25 전쟁 중 첫 출격(1952.12.14.)을 앞둔 환송행사(장행회:壯行會, 1952.12.5)에서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천영성)에게 제2기 후배들이 응원의 내용과 성명(서명문)을 담아 전달한 태극기다.

6.25전쟁 당시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출격 서명문 태극기
6.25전쟁 당시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출격 서명문 태극기

응원의 내용은 ‘臨戰無退(임전무퇴)’, ‘信念(신념)’, ‘祖國統一(조국통일)’, ‘快男兒(쾌남아)’, ‘祝初出擊 先輩 千永星 中尉(축초출격 선배 천영성 중위)’ 등으로 출격에 임하는 조종사에 대한 격려와 전쟁 승리에 대한 다짐과 각오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6·25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정규과정을 통해 조종사를 배출하려는 공군의 의지와 노고가 상징적으로 집약된 첫 출격의 기록으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천영성(1929~2019년, 6·25 전쟁 중 62회 출격)은 강원도 고성군 ‘351고지전투 항공지원작전(52.10.25 ~53.7.27)’ 에 F-51D 전투기 편대로 투입되어 적 벙커·동굴을 파괴하는 등 38선 북쪽의 설악산·속초지역 및 거진-간성지역을 확보하는데 기여(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등 역임)했다.

문화재청은 이와함께 고흥 소록도 4·6 사건 진정서 및 성명서, 고흥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유물, 서울 진관사 소장 괘불도 및 괘불함 등 3건을 문화재로 공식 등록했다.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2021년 4월 5일자 ‘소록도 인권 탄압 1954년 4.6사건 성명서 문화재 된다’ 보도.

성명서는 1950년대 초 환자들의 증가와 전쟁으로 인한 구호물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당시 소록도 갱생원장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운영에 대한 반발로 원장 불신임을 요구하며 일어난 대규모 시위사건 관련 유물이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당시 비인권적 수용 상황과 원장의 비위사실을 밝힌 진정서와 증빙자료인 물품통계표를 작성하였고, 이후 성명서를 발표하며 항거하였다. 이 유물은 4·6 사건의 경과와 내역을 알려주고 있으며, 자유와 인권을 외친 한센병 환자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진관사 괘불도 등은 1935년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에 맞추어 일섭(日燮, 1900~1975년) 등 당대 화승 5명이 참여·제작하여 삼각산 삼각사(三覺寺)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그 뒤로 부처의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배치한 오존도(五尊圖)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존상의 얼굴과 신체, 옷 주름 등에 빛을 인식한 명암법을 사용하여 그림자를 표현하는 등 입체감, 공간감과 같은 근대기의 새로운 표현 기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