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조 추상화’거장 정상화 회고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9월26일까지

회화·드로잉 등 100개 작품 전시

프로타주 등 국내 미발표작도 선봬

현대미술 토대...미술사 의미 재조명

한국 단색조 추상화의 거장 정상화(89)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70년에 가까운 화업을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구순의 나이에도 그의 말은 막힘이 없었고, 눈빛은 형형했다. [연합]
한국 단색조 추상화의 거장 정상화(89)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70년에 가까운 화업을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구순의 나이에도 그의 말은 막힘이 없었고, 눈빛은 형형했다. [연합]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상화,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서스테인 웍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서스테인 웍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리 몸에 핏줄이 돌듯 나는 내 작품에 핏줄과 심장 박동을 담고 싶었다”

구순의 화가가 기자들 앞에 섰다. 눈빛은 형형하고 말은 막힘이 없었다. 시기별로 전시된 작품 앞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 작가는 청년의 모습으로, 장년의 모습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내 나이 아흔이지만 다음 전시에 내 작품이 또 변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같은 것을 계속하는 것은 용서 못 한다.” 한국 단색조 추상화 거장 정상화 화백(89)의 일성이다.

정상화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오는 9월 26일까지 작가의 작업생애 전반을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 신입생이던 1953년 그린 ‘자화상’을 시작으로 1950년대 중후반 표현주의적 추상과 1969년 탄생한 단색조 추상,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단색조 격자형 화면구조 작업이 확립된 1970년~80년대, 이후 격자화가 완성·심화 되는 1990년대 작업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회화부터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 프로타주(탁본 기법) 등 평면에서 평생 씨름했던 다양한 실험 100여점이 펼쳐진다.

1932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정상화는 1957년 대학 졸업 후 1967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그러나 1년만에 아내의 병 때문에 귀국했고,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고베에서 머물렀다. 파리에서는 혁명이 한창이어서, 일본에서는 한국 작가인 자신을 불러준 화랑과 관계자의 뜻에 부응하고 싶어 ‘작업만’ 했다. “남이 못 하는 걸 하려고 했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작가는 1977년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1992년 귀국 때까지 그곳에서 활동했다.

새로움에 목말랐기에 눈만 뜨면 미술관을 찾았다. “이틀에 한 번 꼴은 미술관에 갔다”는 그는 “사실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망가다시피 떠났기 때문에 가족들에겐 늘 미안하다. 언젠가 자식들이 내 작품을 보고 아비의 일을 이해하길 바랐다. 이 작품들은 바로 그 결과”라고 말했다.

정상화 하면 떠오르는 격자형 화면구조 작업은 이같은 실험과 노력 끝에 탄생했다. 더불어 고된 육체적 수고의 결정체기도 하다. 캔버스에 고령토를 3~5mm두께로 발라 일주일 이상 건조시킨 뒤, 뒷면에 미리 그어둔 수직·수평·대각선에 맞춰 캔버스를 접는다. 그 과정에서 화면에 균열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이를 칼이나 조각도구로 뜯어내고 빈 곳을 물감으로 채운다. 이같은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 입체성을 획득한다. 입체적 균열 사이로 작가의 ‘핏줄’이 화면을 타고 흐르듯 펼쳐진다. “화가들이 붓으로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그리듯 나는 드러내고, 메우고, 다시 드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화면안에 설득력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을 때 멈춘다”

전시엔 종이와 프로타주 작업 등 국내에서 자주 소개되지 않은 작품과 미발표작도 함께 선보인다.

정상화의 작업은 사실 시장에서 먼저 알려졌다. ‘백색 단색화라도 그 안에 수많은 흰색이 담겨있음’을 컬렉터들이 알아본 것이다. 2015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그의 작품이 11억4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단색화 열풍의 선두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작가 작업의 맥락과 작품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전시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상화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확장하는 시도로, 정상화의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동시대적 맥락을 살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