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의 우려 속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양국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6G, 양자기술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과 포괄적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해외 원자력시장 공동 진출, 미사일 지침 종료 등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내실 있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양국 간의 협력이 안보동맹에서 과학기술동맹으로 확장됐다는 점일 것이다. 한·미 과학기술동맹 논의가 1990년대 중반에 제안됐음에도 이제야 전면에 부상하게 된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핵심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 미국과 대등한 협력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한 우리 과학기술에 자긍심을 느끼며, 그간 고생한 과학기술인과 기업의 노고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과학기술이 인류의 안전과 번영을 담보하는 팍스 테크니카(Pax Technica) 시대에 한·미 과학기술동맹의 중요성은 더욱 주목받는다.
무엇보다 미국의 기술력과 투자 규모에 주목해야 한다. 민간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100조원에 달했다고 하지만 이는 전 세계 R&D 투자의 4% 내외에 불과하다. 우리의 가용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 밖에서 사용되는 96%, 특히 이 중 40%를 차지하는 미국과의 전략적인 연계와 협력이 절실하다.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를 통한 양자·다자 간 협력, 과학기술 ODA, 거대 연구시설·장비 구축,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양국 간의 기술 협력을 포괄적 과학기술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정상 간에 합의된 사항들을 차질 없이 이행함은 물론 지속 가능한 신뢰 기반의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해 전방위 협력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국가 간 과학기술 협력 채널이 필요하다. 국가 R&D 컨트롤타워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를 과학기술 협력의 대표 창구로 지정하고 ‘한·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통해 전 부처의 협력 의제들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주, 극지, 핵융합 등 거대과학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참여도 확대해야 한다. 지난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유인 달 탐사사업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협력에 서명한 것은 좋은 사례다. 1971년에 창립돼 1만여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1994년 설립된 ‘한미과학기술협력센터’ 등의 민간 기구를 지속가능한 교류 협력의 교두보로 발전시켜야 한다. 양국 정부의 공식적 참여를 통해 협력기금을 확충하고, 미래 세대의 인적 교류와 학술활동, 공동 연구를 지원해 협력의 토양으로 삼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백신연구소, 녹색기후기금 등 국내에 유치, 운영 중인 국제기구 활동에 양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글로벌 문제 해결에도 힘을 모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의 조별과제만 봐도 쉽지 않은 것이 협력이다. 하물며 국가 단위의 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격상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에 조급한 보여주기식 성과를 쫓기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양한 층위의 노력과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활발한 인적 교류와 지속 가능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한·미 과학기술동맹이 새로운 한·미 관계의 든든한 축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