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부족’ 중남미 주민들, 미국으로

중남미 백신 부족에 美 백신 관광 홍보 더해져 활기

천정부지 항공료·숙박비에도 아깝지 않은 목숨값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온 페루인 사라 칼리니코스 씨가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국제공항에서 화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CNN]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온 페루인 사라 칼리니코스 씨가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국제공항에서 화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CNN]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 아니라 ‘백신 드림(Vaccine Dream)’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 도착했다.”

남아메리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피해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인 페루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엘버 에스텔라(49, 여) 씨는 미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위치한 한 백신센터에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후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손쓸새 없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모습을 본 에스텔라 씨는 망설임없이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떠났다.

시애틀에서 간호사가 자신의 팔에 백신을 놓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에스텔라 씨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며 “더이상 러시안 룰렛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고 CNN에 털어놓았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백신 공급 불균형 현상 속에 백신 확보에 실패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의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시민들이 미국 등 백신이 풍족한 국가로 ‘백신 관광’을 떠나는 경우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백신 부족’ 중남미 주민들, 미국으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상대적으로 더딘 중남미 국가에서는 백신 접종을 위해 미국으로 백신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구스타보 로젤 페루 공공보건부 차관은 지난 18일 언론과 만나 해당 시점까지 약 7만명의 페루인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호세 리카르도 보텔류 중남미·카리브항공운송협회(ALTA)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 국가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여행객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는 백신 관광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CNN 방송 화면 캡쳐]
[CNN 방송 화면 캡쳐]

이어 그는 “전체 중남미·카리브해 지역 역외 여행객 중 미국 등 북미로 향한 여행객의 비율은 지난 2019년 77%에서 올해 3월 87%로 증가했다”며 “백신 관광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중남미 지역 주민들이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떠나는 현상은 그만큼 중남미 지역의 코로나19 백신 수급이 절망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란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카리사 에티엔 팬아메리칸보건기구(PAHO) 이사는 “4억도스 이상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가운데 대부분이 미국에서 실시됐다”며 “라틴아메리카인의 3%만이 코로나19 백신 2회 접종을 끝마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남미 백신 부족에 美 백신 관광 홍보 더해져 활기

중남미인들의 미국 백신 관광은 미국 주(州)정부들의 백신 관광 홍보와 남미 국가들의 백신 공급 부족 사태가 더해지며 더 활기를 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CNN의 취재에 따르면 ‘백신 관광’ 목적으로 미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백신센터에서 미국 시민권 없이도 외국 현지 신분증이나 여권만으로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수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뉴욕시는 도시 명소 가까이에 이동식 백신 접종센터를 개설하기도 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뉴욕시는 관광객들을 위한 백신 접종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것이 뉴욕으로 돌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환영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본국에서는 언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지 모르는 중남미 국가 주민들은 큰 돈을 들여서라도 미국으로 속속 날아오고 있다.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온 우르술라 곤살레스 씨가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위치한 약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접종 증명서를 받은 모습. [CNN]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온 우르술라 곤살레스 씨가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위치한 약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접종 증명서를 받은 모습. [CNN]

페루에서 온 플라비오 산 마틴(46)은 “페루에선 올해 12월 전엔 접종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며 “점점 더 내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쓰러지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백신을 찾아 스스로 떠나야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멕시코에서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와서 존슨앤드존슨(J&J)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파멜라 카드(37)는 “우리 가족의 안전이 더 중요한 이 때 더이상 백신 접종 차례만을 기다릴 수 없다”며 “백신만 맞을 수 있다면 공황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두 국가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존스홉킨스대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와 페루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각각 약 240만명, 약 193만명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백신 접종률은 멕시코가 9%, 페루는 3%에 그쳤다.

천정부지 항공료·숙박비에도 아깝지 않은 목숨값

본국에선 백신 접종이 요원한 중남미인들은 백신 관광을 위해 필요한 거액의 돈도 아깝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항공권의 가격과 미국 내 숙박료는 성수기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리카르도 아코스타 페루 관광협회 회장은 “지난 2월 페루에서 미국으로 여행한 사람의 수는 1만명 수준에서 지난 4월 4만780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며 “페루 수도 리마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공편이 6월까지 매진됐다”고 설명했다.

[CNN 방송 화면 캡쳐]
[CNN 방송 화면 캡쳐]

항공가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맘때 평균 500~700달러였던 리마 발 마이애미행 일반석 가격은 최근 최소 1200달러에서 최고 4500달러까지 치솟았다.

멕시코인들도 미국으로의 백신 관광을 위해 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카드 씨는 나흘간의 백신 관광을 위해 1만 멕시코 페소를 썼다. 이는 멕시코에 있는 한 가족이 한 달 동안 음식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전 세계 백신 생산과 유통을 감시하는 미 듀크대학의 에르네스토 오르티즈 글로벌 보건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전 세계 백신 유통에 대한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백신 관광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