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세기 네덜런드의 초창기 초기의 골프 모습.
13~4세기 네덜런드의 초창기 초기의 골프 모습.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갑자기 양 한마리가 우는 소리가 양치기 헨리의 상념을 깨버렸다. 입에 물고 있던 풀피리를 내뱉고 헨리는 눈앞에 아른거리던 무역선의 광경을 무참히 뺏아버린 양을 향해 욕을 했다. 십자군전쟁의 끝자락이어서 헨리는 다행히 전쟁터에 끌려나가는 불행은 없었지만 목동일도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유럽의 재앙은 그러나 십자군 전쟁으로 끝이 아니었다. 재앙은 또 있었다. 전 유럽을 휩쓸고간 페스트는 사람들을 전쟁보다 더 무서운 공포로 몰아넣었다. 14세기 중반인 1348년 흑해의 크림 반도 남부 연안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이내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로 상륙했다. 서유럽 여러 나라를 왕래하던 무역선들이 병을 실어나르는 주범이었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해안을 따라 남프랑스 마르세이유까지 전염시키는 등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집안에 화장실이 없었던 서민들은 오물을 길가에 버렸다. 유럽의 중세는 그렇게 지저분했다. 병은 급속도로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는 고열과 오한이 함께 나면서 일주일도 안돼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폐로 감염되면 하루 만에 죽기도 했다.전 유럽이 공포에 휩싸였다. 종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제도 걸렸고 주교도 전염됐다. 수도사도 죽었으며 예외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환자가 죽으면 집에 못질을 하고 시체를 불태우는 게 전부였다. 5년도 안된 기간 동안 2천5백만 명이나 되는 유럽의 인구가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은 족히 되는 인명 피해였다.짧은 기간 동안 인구가 급감됐고 이전의 인구로 돌아가는데는 2백 년이 지나야 했다. 봉건제도 하에 갇혀있던 농노들이 떠났다. 귀족과 영주들도 배가 고팠다. 장원제도는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지방 영주들의 쇠퇴와 함께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중앙집권제로의 복귀라는 왕권 강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중세의 사회를 지배하던 교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페스트로 인해 사제도 죽고 주교도 죽자 사람들은 교회를 불신했다. 페스트의 참사가 신의 속박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는 인본주의, 즉 르네상스 운동이 태동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15세기 근대사회로 접어드는 길목과 중세의 끝에서 헨리는 그렇게 서 있었다. 오늘도 바람은 여전히 황량하기만 했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헨리를 방해했던 한 마리를 빼고 양들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초원에서 풀을 뜯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헨리는 소일거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덕배기에 주저앉아 어느 한 곳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헨리 앞에서 토끼가 왔다갔다 하더니 갑자기 굴을 파고 그 안으로 숨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주변으로 옮겨져갔고 이제까지 그저 별 의미없이 지나쳐 보기만 했던 초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고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골프 600년의 비밀>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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