죌릭, 미 외교사 240년 생생한 기록 펴내
미 탄생부터 트럼프까지 '실리주의'관통
초기 영국.프랑스 줄타기외교 실익챙겨
'새로운 세계 질서' 구상은 미국적 전통
한미 외교사는 무역 기술 등에 기반 발전
한국은 주요 동맹국 미 세계 질서에 기여
새로운 도전과 위험에 상호 유대 넓혀야
1778년 2월6일 저녁, 필라델피아 출신 외교관 벤 프랭클린은 프랑스 외무장관 버게네스 백작의 파리 소재 사무소에 도착, 군사동맹 협정과 무역 협정 두 개의 조약에 서명했다. 영국과 앙숙이자 신뢰할 만한 강력한 프랑스왕국이 공화정 체제를 가진 신생 미국을 인정한 것이다. 이 서명식에 프랭클린은 2년전,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추밀원의 한 청문회에서, 영국왕실 법무차관 알렉산더 웨더번에게 굴욕을 당했던 때 입었던 낡은 청색 맨체스터 벨벳 코트를 입고 나갔다. ‘미국 최초의 외교관’, 프랭클린은 이 복장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영국에 하나의 작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미국 외교의 첫 장면은 복수전이었던 셈이다.
세계은행 전 총재이자 아버지 조지 부시 때 국무부 차관, 아들 조지 부시 때 무역대표부 대표로 활동한 로버트 죌릭이 미국 외교사 240여년 역사의 현장을 묵직한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세계속의 미국:미국 외교와 대외정책의 역사’(북앤피플)는 신생국가 미국의 탄생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까지 현장을 중심으로 미국이 달성해나간 외교적 성취와 특성, 외교의 얼굴들을 살펴나간다.
죌릭은 자신의 경험과 역사에 기반, 미국 외교의 특징을 실용주의로 제시한다. “때로는 국내 정치적 시각에서 때로는 미래에 대한 관점에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에 관한 것”이라며, “미국 외교의 실용주의는 특정 사안들에서 결과를 달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지 이론을 적용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실용주의 전통은 건국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 프랭클린과 제이, 애덤스 등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로운 국가의 독립과 광대한 영토를 담보해주는 기회를 포착,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실리 외교로 합의를 성사시켰다. ‘제이 협정’의 주인공, 존 제이는 영국과의 적대감을 피하고 미국이 뿌리 내릴 기회를 제공했으며, 알렉산더 해밀턴은 서부 변경을 손에 넣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헌법을 유연하게 해석, 루이지애나 구매를 적절한 시기에 완성했으며, 존 퀸시 애덤스는 유럽혁명에 참여하기 보다 미국의 에너지를 대륙 내 영토 확장에 집중하고, 유럽인들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몰아냈다. 그런가하면 링컨과 수어드는 창의적인 법적 추론을 개발,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 내전에 개입하는 것을 막았다.
20세기에 들어오면, 윌리엄 맥킨리는 하와이의 병합에 대한 상원의 3분의2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자 양원 합동 결의로 문제를 해결했으며, 루스벨트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1941년 선발 징병법을 통과시켰다. 아이젠하워는 초기 냉전의 극도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장기전을 준비했으며, 케네디는 위기를 실용적으로 처리해나갔다. 레이건은 교섭과 수용을, 부시는 과감한 조치와 신중한 억제력을 통합, 지속적인 외교력 확장을 통해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켰다.
저자는 지도자들이 실제적인 외교정책에 대한 안목을 잃은 경우,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우드로 윌슨은 집단 안보에 대한 계획을 해외의 세력 실체와 국내 정치적 지원 요건을 무시해 실패했으며, 린든 존슨은 국내 정치에 매몰, 미국이 베트남에서 성취할 것과 미국 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것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해 무너졌다.
저자는 세계질서와 미국 외교의 방향이 바뀌고 불안정한 지금, 미국의 초기 150년 동안 얻은 아이디어와 실제적 경험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외교사는 근·현대 우리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만큼 겹쳐 읽기가 가능하다.
죌릭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외교사를 돌아봤다. 그 시작은 1860년대 후반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의 미국 무역과 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전략적 비전 지도에 들어있다. 수어드는 지도에 조선 ‘숨어있는 왕국’을 포함시켰다. 1882년 제물포조약을 체결, 입성한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자들과 달리 ‘조선은 독립적인 주권국가’임을 주장한다.
20세기 초, 미국에게 한국은 만주와 함께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의 지역 경쟁에서 주요 무대로 인식된다. 루스벨트는 러일전쟁 중재에 나서는데, 1905년 조선은 열강의 전장이 된 상태. 미국은 북동아시아에서 이익을 두고 싸우고 싶지 않았으나 루스벨트는 세력균형 외교차원에서 1908년 일본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해주고 대신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 통제에 도전하지 않는 데 일본과 합의한다. 저자는 “한국인들은 이런 미국의 조치에 경악할지 모르지만 당시 지정학적 계산의 맥락을 알 필요가 있다”고 부연 설명한다.
죌릭은 윌슨 대통령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연설로 유명한 소위 ‘윌슨 순간’이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촉발한 동시에 한국 국수주의 출현의 분기점이 됐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한국전쟁은 아시아 태평양에서 하나의 보완적인 안보체제를 개시했으며,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패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 개방은 아시아 세력 정치의 체스판에서 교묘히 움직였고, 한국에 장기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죌릭은 미국 외교의 전통적 특징이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다. 우선 미국인들은 무역, 초국가주의, 그리고 기술이 세계와 자신들의 유대를 형성한다고 보고 있으며, 한·미 안보 및 경제와 민주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기술을 채택, 최근에는 세계적 수준의 혁신가들이 됐다고 평가한다. 또한 한국은 주요 동맹국이자 때로는 지역 및 세계 질서를 위한 미국 설계에 대한 기여자로 행동해 왔다며, 양국은 새로 등장하는 위험과 전통적인 위험 둘 다에 직면해 상호 유대를 지속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책은 미국 외교의 오랜 전통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세계 정치외교 체스판 위 한국의 역사, 지정학적 딜레마 속에서 한국 외교의 방향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는 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세계 속의 미국/로버트 B. 죌릭 지음, 홍기훈 옮김/북앤피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