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여흥민씨
경기도 여주(옛 여흥)를 본관으로 하는 이조판서 민신(?~1453, 시호는 충정공)은 충절을 지킨 단종 3중신 중 한 명이다. 수양대군 일파에 죽음을 당한 그와 그의 아들들은 영월 장릉의 장판옥, 정조때 1791년 다시 기록한 230명의 충신 명단 ‘장릉배식록(莊陵配食錄)’에 기록돼 있다. 장릉 장판옥에는 민신의 아들 민보창,보해,보석,보흥,민석도 적혀 있다. 모두 계유정난과 안평대군 사건에 연루됐다.
민신은 세종·문종 때 병조판서 이조판서로서 어린 임금 단종을 보호하려다 참살당했다. 해남 미산서원의 충정사에 배향되고, 훗날 나라에서 부조묘와 4충(문)정려를 내려 충절을 기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들이 모두 피살된 뒤, 보창의 아들이자 민신의 장손인 민중건(1446~?)은 계유정난 당시 일곱 살로, 항아리 속에 숨겨져 전남 진도군수로 있던 외숙 김종에게 의탁해 목숨을 부지하고 해남에서 성장했다. 민중건에 의해 여흥민씨 해남 세거가 시작된다.
종가에 따르면, 여흥민씨 시조는 고려조에 중국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해 여주에 정착하고 정6품 상의봉어를 지낸 민칭도이다.
9세 민적(1270~1336)은 과거에 급제하고 나주목사를 거쳐 밀직사사, 진현관대제학에 올랐다. 민적의 아들 민변(?~1377)은 밀직대언을 역임하고 여흥군에 책봉됐다. 그의 아들 삼형제가 민제, 민량, 민개이다. 민제(1339~1408)는 예조판서, 한양부윤을 지냈으며 이방원의 사부이자 장인이었다. 조선 개국에 참여해 정당문학, 좌정승에 올랐고,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아버지로서 여흥부원군에 봉해졌다.
여걸인 원경왕후 민씨(1365~1420)는 1,2차 왕자의 난에서 친정의 도움으로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즉위 후 태종의 외척 견제에 따라 친정 4형제가 사사되는 불행을 겪었다.
대사헌 민개(1360~1396)는 이성계의 국왕 추대에 반대했지만 참살을 면하고 경상도관찰출척사로 일하다 병사했다. 단종의 충신, 민신은 민개의 아들이다.
14세 민삼은 지금의 종가가 있는 해남 마산으로 이거해 충정공파 동외종가를 열고 15대를 이어 선조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15대 종손 민준홍씨는 가문 보배의 보존에 앞장서고, 선조들의 계보를 병풍으로 만들어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함영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