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동연 저서 ‘둘이서 바꿔봅시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 염동연 전 의원이 당시 대한민국을 열광시키며 청문회 스타에서 일약 대선후보로 올라선 반전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를 20년만에 풀어놨다.

염 전 의원은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든 그야말로 바닥부터 킹메이커다.

염 의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둘이서 바꿔봅시다’(메디치미디어)에서 노무현을 후보로 점 찍은 때를 90년 3당 합당 당시 ‘호남을 고립시키는 정치적 야합’이라며, 합류하지 않은 노무현을 보고 대통령감으로 점찍었다고 돌아봤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총재의 외곽부대이자 청년전위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를 이끌던 염동연은 2000년 노무현을 찾아가 설득한다. 그의 논리는 ‘호남이 미는 영남후보론’이었다. 그는 노무현의 대중적 인기 이미지와 지역주의 종식을 위해 DJ깃발을 들고 영남에서 30%를 얻은 저력에서 가능성을 봤다.

염동연은 “노무현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해 내 모든 것을 걸었다”며, “조직 구축 및 관리, 자금 조달, 언론 접촉 등으로 매일매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에 대해 당 내에선 부정적이었다.

십중팔구는 “가능한 일이라고 얘기하신 겁니까?”“무슨! 노무현이…. 대통령이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노무현론을 들으려조차 않으려는 이들을 위해 논리를 빼곡히 적은 쪽지를 만들었다. A4사이즈 한 장을 수만 장 복사해 쪽지로 접어 호주머니에 10여 장씩 넣고 다니며 건네주고, 지역책임자에게도 쪽지를 나눠주며 당원들에게 건네주도록 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마침내 본선경쟁력에서 이인제보다 노무현이 낫다는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결정적 사건은 광주 경선이었다. 이인제 대세론에서 ‘노풍’으로 바뀐 것. 저자는 이를 이인제의 미숙한 대응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경선 직후 이인제는 ‘청와대의 노무현 지원설’을 제기, 당원과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2002년 8.8 재보선은 노무현 후보의 당내 입지를 급격히 흔들어 놓았다. 국민의 정부 레임덕으로 11대 2라는 참패를 당하면서 노무현 재신임론이 거론됐다. 노무현 사퇴, 집단 탈당이 제기됐다. 저자는 당시 노무현의 무력한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고 말한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다른 측면에서도 흔들렸다. 그는 5년 청와대 생활을 감옥살이에 비유하며, 퇴임하고도 죽을 때까지 그런 생활을 면치 못할 것에 마음이 쓰였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나!”“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청와대 5년 뻔한 것 아니겠어요. 감옥생활이나 같아요. 더구나 퇴임하고도 자유가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염동연은 그런 노무현에게 가볍게 응수했지만, 그의 뒷모습이 무척 측은하고 처량해보였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대선 승리의 전략으로 ‘전략이 없는 것이 전략이었다’고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설명했다. 군사독재와 YS와 DJ로 이어지는 민주적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민은 그런 시대의 종식을 끝내기를 원했고, 노무현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진 결과란 것이다. 저자는 노무현이 추진했던 공수처 관련, 당내 경선시절부터 공약을 내걸고 이재철 변호사를 내정했었다고 밝혔다.

책은 노무현 신화 탄생과정을 속속들이 기록한 책으로 현대정치사적으로도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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