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굽이길, 유배문화공원, 한반도바위 눈길
흑산도 아가씨 동상은 소양강 처녀보다 온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다음갤러리에서 공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홍도를 관할하는 중심 섬 흑산도에 가면, 사리라는 마을에 유배문화공원이 들어섰다. 손암 정약전이 고기잡이와 해양자원 탐방을 마치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촌서당 등이 있다. 이 마을을 지나 열두굽이길을 지나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를 만난다.
유배문화공원의 중심인물은 정약전이다. 수산물 연구는 당시로선 양반이 할 일이 아니었지만, 정약전(1758~1816)은 실학자 중 몇 안되는 ‘실천하는 실학자’로 아우(다산 정약용)와 함께 손꼽힌다.
도움을 준 사람은 서른 네살이나 어린 흑산도 청년 어부 장창대(1792~?)였다. 동생 정약용의 둘째아들인 정학유(농가월령가) 보다도 여섯살이나 어린데, 해양자원 연구에 관한한 정약전은 장창대의 제자나 다름 없었다. 물론 서당에 들어서면 어선위에서 기고만장하던 장창대로 꼼짝 못했을 터이다.
이렇게 1814년 완성한 자산어보는 어류학서이자 해양생물백과사전이다. 흑산도 주변의 물고기와 해양생물을 종류별로 분류해 이름, 모양, 습성, 맛, 건강 효능, 민속, 고기잡이 도구까지 정리했다.
정약전은 섬사람들에게 덕망 높은 선비였으며, 흑산도 외에 우이도에도 서당을 열어 섬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영화 자산어보가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연수)가 다음(Daum) 포털에서 제공하는 다음갤러리(카카오갤러리)에서 ‘정약전과 자산어보, 그리고 흑산도’라는 제목의 온라인 전시를 27일부터 공개한다.
이번 온라인 전시는 조선 후기의 섬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섬과 유배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한편,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해당 자료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공도(空島)·해금(海禁) 정책으로 해양활동은 위축되었으며, 섬은 바다를 사이로 육지와 격리된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유배의 땅으로 활용되었다.
16~17세기 섬에 수군진(水軍鎭)이 집중적으로 설치되면서 섬 유배인은 더 증가하였다.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유배 온 낮선 이방인과 섬사람들의 만남, 갈등, 교류 속에서 피어난 옛 선인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전시다.
흑산도에서는 흑산도아가씨 동상, 열두굽이길, 세계 건축사에 중요한 연구대상인 절벽도로 하늘일주도로,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바위구멍이 한반도 모양으로 뚫린 새로운 형태의 ‘한반도 바위’ 등을 구경하고 싼값에 전복죽 등을 실컷 먹을수 있다. 한반도 바위의 작명 방식은 홍도의 코카콜라병 바위와 같은 맥락이다. 뚫린 구멍 모양이 이름이 된 것이다.
온라인 전시는 제1부 자산어보의 역사적 의미, 2부 신유박해와 정약전 형제의 유배, 3부 유배인을 품은 풍요로운 섬, 흑산도(조선 시대 고지도와 흑산도·우이도 사진을 통해 정약전의 적거지 謫居址 소개), 4부 바닷가 청년 어부, 장창대와의 만남, 5부 아시아를 표류한 우이도 청년 홍어장수, 문순득과의 만남 등으로 꾸며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