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인터뷰

'러닝으로 바뀐 내 삶'은 어땠나 설파

“달리기 할 때는 온전히 내삶에 집중할 수 있어”

“같이 뛰는 활동 통해 장점 배가 돼”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 아닌 문화” 강조

안정은 런더풀 대표. [사진=유충민 PD]
안정은 런더풀 대표. [사진=유충민 PD]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중국정부가 사드 보복으로 한한령(寒限令)을 내렸을 때, 소녀는 '중국계 항공사' 입사를 앞두고 있었다. 꿈꿔왔던 승무원이란 꿈이 목전에 있었다.

헌데 사드 보복으로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6개월, 10개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소녀는 매일같이 울었다. 친구들에겐 "항공사 합격한 거 거짓말이냐"는 얘기도 들었다. 속으로 설움을 삼키며 훌쩍이는 날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눈물이 났다. 부끄러웠다. 눈물을 땀처럼 보이게 하려고 힘껏 달렸다. 그때였다. 쌓였던 묵은 감정이 땀과 함께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조금 신도 났다고 한다. '러닝전도사' 안정은(29) 런더풀 대표의 첫 번째 달리기다.

그 '눈물젖은 달리기'가 안 대표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후 달리기는 그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뛰는 것이 점차 즐거워졌다고 한다. 여러 차례 마라톤에 나갔고, 수시로 뛰는 삶을 살고 있다. 달리기가 너무 좋아서 회사를 차리고 책도 냈다. 실패에 쳐졌던 성격은 이내 다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사드에 얽힌 상처는 옛 기억이 돼 희미해져만 갔다.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헤럴드 스튜디오에서 안 대표를 만났다. 안 대표는 '러닝전도사'라는 별칭으로 활동하는 셀럽이다. 달리기 경험을 통해 달라진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있다. 인터뷰는 안 대표의 삶, 그리고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닌 거 같아요. 인생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만, 같은 길로 가는 게 아니거든요." 달리기와 관련된 명언으로 대화가 오가던 중 안 대표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승무원이란 인생 목표를 내려놓은 뒤 새로운 꿈을 그리게 된 자신의 삶에 빗댄 얘기였다. 안 대표는 여기에 덧붙였다. "실패하는 길도 여러 가지, 성공하는 길도 여러 가지죠. 삥 돌아가서 성공할 수도, 혼자서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성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안정은 대표 [사진=안정은 인스타그램 갈무리]
안정은 대표 [사진=안정은 인스타그램 갈무리]

■ '프로그래머→승무원→러닝전도사' 지금의 안정은이 있기까지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 러닝전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안정은이다. 건강한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 러닝전도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지?

= 러닝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간단하게 러닝 이벤트를 기획하는 수준부터, 러닝에 관한 글을 쓰는 것, 아니면 러닝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사람들에게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강연을 한다든지, 홍보대사를 하거나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

런더풀이란 회사도 운영한다. '달리기를 통해 원더풀한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런더풀은 러닝과 관련 이벤트나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1인 기업이다. 탑걸스크루라는 러닝크루도 운영하는데, '브라톱을 입고 뛰는 모임'이란 뜻과 '넘버원(Top·탑)'이라는 뜻을 함께 담은 중의적인 이름이다. 몸매가 이쁘지 않아도 뱃살이 나와도, 내가 가장 예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뛰는 모임이다.

- 원래는 승무원을 꿈꿨다고 들었다.

=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개발자가 됐다. 그런데 막상 개발자가 되니 본래 생각했던 거랑 전혀 달랐다. 나는 무언가 만들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컴퓨터는 대답이 없고, 말이 없으니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힘들었다. 그래서 입사 6개월 만에 회사를 관뒀다.

이후 '내가 진짜 원하는 걸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승무원에 도전하게 됐다. 1년 동안 영어, 중국어 공부와 다이어트에 매진했다. 그리고 원하는 중국 항공사의 문을 두드렸고 합격통지서도 받았다. 헌데...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이 쟁점이 되고 취업비자를 안 내주더라. 처음에는 1~2개월만 기다리면 비자가 나올 줄 알았다. 항공사 측에서도 "조금만 기다려라. 어차피 다 나온다"라고 했고. 근데 그게 6개월이 되고 10개월이 되고 1년이 넘도록 안 나왔다. 승무원의 꿈은 그렇게 좌절됐다.

- 힘들었을 것 같다.

= 펑펑 울었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는 생각을 했다. (웃음) 그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어느 날 산책하러 나갔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을 감추고 땀처럼 보이게 하려고 5분가량을 뛰었는데,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 계기로 달리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자주 뛰다 보니 오랜 시간 뛸 수 있을 정도로 체력도 좋아졌다. 그 재미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후 2018년께부터 달리기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안정은 런더풀 대표. [사진=유충민 PD]
안정은 런더풀 대표. [사진=유충민 PD]

■ 달리기의 매력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줘요"

- 사실 운동은 하면 다 좋다. 특별히 '달리기라서' 좋은 이유가 있을까?

= 우선 언제 어디서든 신발이랑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잠깐 시간내서 짬 내서 할 수 있고, 해외를 간다든지 지방 출장을 간다든지 그래도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친구랑 약속을 잡지 않아도, 멀리 가지 않아도 달리기를 할 수 있다. 딱히 장비를 꾸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달리기를 하다 보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달리기하기 전에는 항상 밖에만 본다. 눈은 밖에 달려있으니까,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게 되고... 세상은 빨리 지나가는데 나만 덩그러니 혼자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처음엔 힘들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부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호흡하는 숨소리나 내가 내는 발소리. 아니면 내가 지나치면서 만들어내는 바람의 소리...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 그제야 차분히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 가게 된다.

- 그럼 새벽에 달리는 게 좋겠다.

= 사람마다 기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새벽에 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떤 분들은 달리기를 통해서 그냥 하루의 스트레스를 잊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밤에 뛰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개인의 기호 차이다.

- 비슷한 운동으로 걷기도 있다. 걷기와 달리기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 어느 면에선 비슷하고 어느 면에선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점은 달리기의 시작이 걷기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걷기에서 시작하다가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달리기가 되는 것이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두발이 바닥에 있느냐 없느냐 차이겠고 (웃음) 사용하는 근육이랑 체지방도 조금 다르다.

아…. 다이어트 목적이나 다른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면 둘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의외로 30분 이상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30분 이상 걷기를 하는 게 다이어트에는 효과적이라고 하더라. 걸을 때 걷기보다 체지방이 더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데는 살짝 땀이 흐를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30분 이상 걸으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 뛰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 나는 뛰기 싫을 때는 뛰지 말라고 한다. 공부하기 싫은데 엄마가 '공부해' 그러면 공부하기 싫지 않나? 대신 다른 사람들 뛰는 것을 가서 지켜보라고 얘기를 해준다. 러닝 크루를 찾아가서 응원한다든지, 멀리서 바라본다든지 하면 나도 저 안에서 같이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정은 대표 [사진=런더풀 홈페이지 갈무리]
안정은 대표 [사진=런더풀 홈페이지 갈무리]

■ 같이 뛰기의 즐거움

- 탑걸스크루 얘기를 듣고 싶다. 탑걸스크루를 하며 다른 사람이랑 같이 뛰게 되니 좋은 점이 없나?

= 서로 화이팅을 많이 외치는데 그럴 때마다 신이 난다. 크루 리더인 내가 '탑걸스 화이팅' 선창을 하면, 뒤에서 크루원들이 '화이팅'이라고 같이 외쳐준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화이팅을 해주고 있지만, 그게 나를 위한 화이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 자신에게 힘이 되게 많이 되기 때문이다. 크루를 하게 되면서 혼자 달릴 때도 스스로 화이팅을 많이 하게 됐다.

- 다른 여성 러너들과 뛰면서 경험한 즐거운 일화는 없었는지?

= 탑 걸 스크루는 기수마다 33명씩 크루원을 모집한다. 모임마다 많게는 33명이 함께 달리는 것이다. 뛰다보면 처음엔 수군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헌데 요새는 '멋있다'며 응원해주는 할머니, 어머님들도 많고 많은 분이 관심을 두신다. 한 번은 어떤 분 어머니께서 뛰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 딸도 참여하고 싶다'고 가입 경로를 물으셨다. 그 딸이 지원 동기를 써서 합격했고 다음 기수에서 함께 뛴 기억이 있다. 우리 크루는 어머니들도 권하는 크루다.(웃음)

- 같이 뛴다는 것이 주는 매력이 있단 생각도 든다. 혹시 다른 누군가와 함께 뛰면서 느꼈던 이색적인 경험 같은 건 없는지?

= 4~5년 전께 춘천 마라톤에 나갔을 때다. 그때는 마라톤 풀코스를 많이 뛰어보지 않았던 때였다. 대회 준비를 열심히 하고 나갔는데 많이 힘들었다. 하프 코스(약 20km) 정도 지났을 땐가? 팔을 다친 중년 남성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팔을 다쳐서 우비를 붕대처럼 묶고 달리고 계시더라. 그분이 뛰는데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주셨다. 급수대 보이면 물도 갖다주시고, 뒤처질 때마다 힘내라고 파이팅도 해주시고. 덕분에 결승선까지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9번 완주했는데 그 대회가 가장 기록이 좋은 대회였다.

- 정말 따뜻한 얘기다.

= 그 대회 끝나고, 그분(중년 남성)께 울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완주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고 헤어졌는데, 그다음 해 3월, 다른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뛰러 갔다가 그분을 만났다. 신기하게 달리면서 했던 얘기나 모습은 기억에 잘 남는다. 그래서 그분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 마라톤을 했다.

20km면 거의 2시간 남짓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성별도, 연령도 다른 사람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달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이 달린다는 것의 매력도 이와 같은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예쁜 문장이 있다. '같이의 가치'라고…. 혼자 뛰면 못 할 것인데, 함께 뛰면 가능한 경우가 많다.

- 승무원이란 꿈은 이제 사라졌다. 러닝 전도사가 된 지금의 꿈은 뭔지 물어봐도 될까?

= 나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이 달리기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꿈이다. 많은 사람이 달리기의 매력을 알았으면 한다. 달리기가 단순히 운동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상생활이고 하나의 문화라고 보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좋겠다.

안정은 런더풀 대표. [사진=유충민 PD]
안정은 런더풀 대표. [사진=유충민 PD]

zzz@heraldcorp.com

기자·진행 김성우 / PD 유충민, 정아휘, 이채연 / 디자인·CG 허연주 / 제작책임 이정아 / 운영책임 홍승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