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노무현 정부시절 서울시장 구원투수로 나서 강금실 전 법무 꺾어

보수 선거 4번 내리 참패 끝내고 승리…젊은 세대에 ‘미래비전’ 제시해야

4·7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국민의힘 오세훈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국민의힘 오세훈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꺾고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6년 민선 4기 서울시장 후보에 당시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장관 출신 강금실 후보를 꺾기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열세로 치닫던 보수진영은 46세의 젊은 후보 오세훈을 내세우면서 극적으로 선거에서 승리, 보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7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4번 연속 참패하던 보수진영의 부활의 씨앗을 다시 틔웠다.

오 시장의 8일 첫 출근의 감회는 남다를 터다. 서울시로 다시 들어오는 것도 감격이겠지만 무상급식 후 서울시장직을 사퇴해 밥상을 걷어차고 나가면서 한국 정치지형을 바꿔놨다는 비난을 10년 동안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서울시청 신청사도 남다르다. 오 시장이 각종 난관을 뚫고 짓고 있던 신청사에서 집무를 하려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지면 사퇴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쳤으나 결국 패하면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2011년 8월 26일 5년여를 출근하던 서울시청을 떠났다.

그가 시장 사퇴 뒤 제일 먼저 한 것은 시장공관을 나와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당시에도 전세난이 심했다. 그는 집을 구하느라 한동안 고생을 했고 광진구에 전세집을 구해 입주했다. 그 뉴스 이후 그는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듯 사라졌다. 간간히 들리는 소리는 그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겸허한 자세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 이었다. 검게 그을렸지만 밝은 얼굴로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사진도 보았다. 40대 중반 젊디 젊은 나이에 막중한 서울시장 직을 수행하면서 무거웠던 짐을 모두 내려 놓은 얼굴이었다.

이후 귀국해 종로구와 광진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두번의 쓴잔을 들었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한국정치 풍토에 ‘뱉은 말’에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서울시장을 사퇴한 뒤 그의 정치행보는 가시밭길 이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그는 다시 서울시장으로 컴백했다. 시장에 당선됐다고 해서 그 앞에 놓인 길은 꽃길이 아니다. 그가 서울시장을 내려 놓을때 보다 어찌보면 더 험난하다. 2010년 당시 서울시의회 의원들 중 70%가 민주당의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90% 이상의 민주당 의원들이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다. 모든 정책에 태클을 걸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있다. 심지어 상임위원장 자리하나 국민의힘에 내주지 않았다. 사사건건 부딪힐수 밖에 없다.

다시 서울시장으로 온 오세훈은 다시 이 고난을 겪어야 만한다. 피할수 없는 숙명이다. 여기에 1년 2개월여의 임기동안 그가 하지 못하고 나갔던 과업을 다시 챙겨야 한다. 요즘에는 10년이면 강산이 3번 변한다고 한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도 이제 환갑이다. 과거엔 일 처리가 세련되지 못했고 그래서 서울시 공무원들의 원성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인프라를 비롯 관광정책, 디자인서울 등 미래 지향적인 정책은 지금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곤한다. 그가 했던 많은 사업들. 그 사업때문에 지난 10년 세월동안 그나마 서울시가 견뎠다는 평가다.

이제 그의 임무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못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직장생활 10년 정도면 자력으로 집을 구할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만들어 정착시켜야 하며, 코로나 19 펜데믹도 막아 시민 무엇보다 가장 피해를 많이 보고 있는 소상공인의 주름살도 펴줘야 한다. 아울러 지난해 박원순 전 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과 극단적 선택 이후 사기가 떨어진 서울시 공무원들도 추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