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처음이자 마지막 방송이 된 마왕의 모습을 담은 JTBC 프로그램 ‘속사정쌀롱’이 지난 2일 오후 방송됐다. TV로는 그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송분이었던 ‘속사정쌀롱’에선 ‘마왕’다운 신해철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쳤다.

지난달 9일 녹화를 진행한 이날 ‘속사정쌀롱’ 1회에서는 방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방송 여부를 놓고 많은 의견들이 있었지만 故 신해철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와 영상을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팬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유가족 분들의 소중한 뜻을 받아 어렵게 방송을 결정하게 됐다”는 제작진의 뜻을 담은 글을 먼저 공개했다.

뒤이어 ‘90년대의 아이콘’으로 가요계에서 활약한 달변가 신해철의 건강한 모습이 방송에 비쳤다.

‘속사정쌀롱’은 대중문화계의 입담꾼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총출동해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프로그램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가수 신해철의 복귀작이었다는 점, 더불어 문화평론가 진중권, 가수 윤종신, 개그맨 장동민까지 합류했다는 점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날 첫회분은 ‘뇌 착각-후광효과’와 ‘백수’라는 주제로, MC로 참여한 입담꾼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특히 ‘후광효과’를 주제로 이야기하던 중 윤종신은 “사실 후광효과의 대표적인 예가 나인 것 같다. 내가 데뷔하던 당시 소속되어있던 회사에 음악을 잘하는 가수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신해철과 O15B, 김동률이었다”며 “내 데뷔무대에 신해철이 함께 했다. 신해철이 나보다 2년 먼저 데뷔한 선배였는데 내가 첫 무대를 떨다가 망쳐버렸다. ‘나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때 신해철이 내 등을 두드려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신해철은 이에 “당시 (윤종신을) 옆쪽 복도로 데리고 나가서 말했다.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닌데 등 돌리는 것은 창피한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 날들을 회상했다.

소신있는 독설가 신해철이 생각한 후광효과는 “제일 창피한 것은 자기가 후광효과 덕분에 잘 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모르는 것”이라며 “여우가 가는데 동물들이 다 길을 비켜서 으쓱댔는데 알고 보니 여우 뒤에 사자가 있었다”는 우화를 꺼냈다.

그러면서 “선천적인 경우는 태어나니 ‘아빠가 누구더라’라는 것이고 후천적인 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다. 쥴리안 레논 같은 경우는 아빠가 비틀즈라는 것이 노력을 해서 극복해야 하는 건데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노력’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백수’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신해철은 복지정책을 꼬집었다. “요즘 사람들을 정신력이 약하다고 할 수 없다”며 “내가 다른 계획을 세우고 오늘 땀을 흘리는 것과 아무것도 디자인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몸이 힘들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가 않아서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운전하는 사람이 기름이 떨어졌을 때 보험사에서 나와 주유소까지 갈 수 있게 해 주듯,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복지”라고 말한 신해철은 “충분한 사회, 환경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바탕한 생각도 덧붙였다. 신해철 역시 “작업실에서 무작정 나오지 않는 곡을 기다릴 때가 있는데, 여기서 뭐라도 일을 하면 생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다시는 이 작업실로 돌아오지 못할까봐서다. 본인도 힘든데 나태한 자라고 몰아세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내를 향한 애정도 느껴진 방송이었다. 신해철은 “결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내가 잘 웃길 수 있고, 내네 잘 웃어주는 여자였다”며 “내가 쉽게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여자,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속사정쌀롱’의 첫 방송에선 신해철의 촌철살인 입담이 쉴새없이 나왔다. ‘부드러운 독설가’의 면모였다.

신해철은 “나는 독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독설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다”며 “살다보니 부드러운 말은 살과 같이 빨리 썩고, 독설은 뼈처럼 오래 남았다”고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 들려준 마왕 신해철의 마지막 이야기는 가시만 지독해 상처가 되는 독설이 아닌가 소신과 깊이가 더해져 뼈가 될 말들이었다.

방송 말미, 신해철의 얼굴 위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편지가 가득 메워졌다. 윤종신은 “이제부터 형한테 잘하려고 했는데 기회를 안주네. 해철 형 편히 쉬어요”, 진중권은 “그의 존재가 참 고마웠다. 잘 가. 해철씨”, 장동민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 우리들의 친구로 다시 태어나주세요”라는 글을 전했다.

신해철은 19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밴드 무한궤도의 리드싱어로 데뷔했다. 이후 솔로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 1992년 전설의 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이후 22년 간 활동해왔다. 지난 6월에는 6년 만에 정규 6집 Part.1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매하며 음악활동에 다시 시동을 걸었으나, 지난달 27일 오후 8시 19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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