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대법원 특수감금혐의 무죄 확정
선고 후 피해자들 격앙… 법정 내 소란도
“이번 판결로 소멸시효 문제 해결될 것”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대법원이 32년만에 ‘형재복지원’ 사건을 다시 심리했지만, 무죄판결을 확정한 기존 결론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1980년대 복지원을 운영하며 수용자들을 가두고 밤낮없이 강제로 노역을 시킨 책임자가 무죄를 선고받으며 논란이 일었다. 판결 후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앙된 감정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1989년 무죄 확정된 특수감금 혐의… 대법원, 비상상고 기각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오전 특수감금 혐의를 받는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비상상고심에서 검찰의 청구를 기각했다. 1989년 박 전 원장의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 후 32년 만이다.
재판부는 박 전 원장 무죄 판결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과 형법 제20조에 의한 정당방위와 관련, “적용한 법령은 이 사건 훈령이 아니라 정당방위에 관한 형법 제20조나 상급심 재판의 기속력에 관한 법원조직법 제8조”라며 해당 판결에 법령 위반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령위반의 의미와 범위에 관하여는 종래 대법원이 다른 비상상고 사건에서 적용하여 온 것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이 갖는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는 점보다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었다는 점”이라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재개할 수 있고,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되어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018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박 전 원장의 원판결 중 특수감금 혐의 무죄 판결에 법령위반의 잘못이 있다며 비상상고를 결정했다. 비상상고란 확정된 판결에 법령위반이 있을 시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하는 비상구제절차다. 피고인의 구제보단 법령 해석의 잘못을 바로잡는 목적에 더 비중을 둔다. 비상상고는 원판결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경우에만 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그 외엔 피고인에게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원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돼 불리한 점이 없던 박 전 원장에겐 인용 결정이 났더라도, 죄는 물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안타까워… 국가로부터 위로와 보상을 받길 원한다는 판단에 의미 부여”
재판부가 기각 결정을 내리자 법정 안에선 소란이 일었다. 재판정 안의 한 피해자는 “질문 있습니다, 질문 받아주세요”라며 큰소리를 외쳐 법원 경위에 의해 법정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했다. 법원을 나선 피해자들은 저마다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출하며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선고 후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과 만난 이향직 형제복지원 피해자 협의회 집행위원장은 “30년 전 대법원 판사나 지금 판사나 똑같다. 그때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죄라고 돌려보냈다”며 “오늘을 기다렸는데, 말장난만 하고 결과적으론 기각으로 아무것도 된 게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 대표는 “기각된 부분에 대해서 피해당사자로서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오늘 재판의 핵심은 박인근 특수감금 재판에 잘못된 해석이 있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이 재판은 박인근의 당시 재판에 대한 기각 사유였을 뿐이지 피해 당사자들의 억울함을 외면한 건 아니라고 해석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과 함께해온 박준영 변호사는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절차 방식도 법에 규정돼 있는 거고, 그 법이 부족하고 흠결이 있다 보니까 오늘 이 비상상고가 기각됐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이분들이 국가로부터 충분한 위로와 보상을 받길 원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소멸시효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30년 이상 된 오래된 사건으로 그 소멸시효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런데 오늘 대법원판결 이유 중엔 국가의 조직적 불법행위를 인정한 부분이 있어 이건 소멸시효가 없는 사건이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에서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없는 사례로 국가의 조직적 행위를 말했다”며 “오늘 대법원이 국가의 조직적 행위를 인정하고 내무부 훈령의 위헌성도 사실상 확인한 판결로, 소멸시효가 형제복지원 사건에선 없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박 변호사는 “대법원 최종적 판단에 담긴 의미가 앞으로 결코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에 있어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되지, 장애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형제복지원은 1975~1987년까지 운영된 부산 북구의 사회복지시설로 부랑인들의 수용시설처럼 사용됐다. 수용자들에 대한 감금, 강제노역, 구타 등 의혹이 계속 제기됐고, 운영 기간 동안 복지원 공식집계로만 513명이 사망했다. 박 전 원장은 1986년 7월부터 1987년 1월까지 경남 울산 울주군에 있는 울주작업장에서 복지원 수용자 3000여 명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고 폭행과 감금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