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김민정 개인전 ‘타임리스’
작가의 손은 작업을 닮았다. 금형이나 조각을 하는 작가의 그것은 노동자처럼 투박하고 거칠다. 회화 작가의 손톱 어딘가엔 물감이 말라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한지를 재료로 작업하는 작가 김민정의 손은 매끈하다. 촛불이나 향불에 타는 한지를 손으로 꺼 원하는 모양을 재단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불의 열기에 지문이 거의 사라져 공항을 오갈때마다 애를 먹는다.
무아지경(無我之境). 무념무상(無念無想).
김 작가는 작업중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몇 시간이나 한지를 자르고 태우고 붙이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내 자신을 둘러싼 현실마저 사라져요. 일종의 참선이고 명상이죠” 얇은 한지가 촘촘하게 맞물려 형성된 입체감은 잡념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작가의 손과 촉각적 감각을 상기시킨다. “제가 작업하면서 느꼈던 평안함, 그 마음을 작업을 보시는 분들도 느끼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수백겹의 그을린 한지가 중첩된 ‘타임리스(Timeless)’연작, 한지를 찢고 태워 동그란 형상을 만들고 그들의 층위를 달리해 우산으로 가득찬 거리를 내려다 보는 듯한 ‘더 스트리트(The Street)’연작,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가득 꽂힌 책장에서 영감을 받은 ‘스토리(Story)’, 먹의 농담을 섬세하게 조절해 완성하는 ‘마운틴(Mountain)’연작 등 전시에 출품된 작품 하나 하나가 명상의 결과물인 셈이다. 작가는 “코로나 시대에 딱 맞는 작품”이라며 “시간이 많아서...(작업했다)”라고 웃었지만 작품 앞에 서면 작가가 쏟았을 시간과 노력에 숙연해진다.
재료가 되는 한지는 억겁의 시간을 은유한다. 김 작가는 한지를 태우는 순간의 행위를 종이가 썩어 사라지는 몇 천 년의 시간을 함축한다고 했다. 먹 또한 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아교로 고정해 만든다. 자연이 생성하고 죽고 사라지는 순환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작업에 담고자 했다. “재료가 저보다 먼저 있죠. 작가가 주인공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내가 태웠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재료의 의지와 형태가 드러날 수 있도록 아주 최소한의 개입을 했을 뿐입니다”
김민정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국립미술원에서 수학했고 이후 지필묵의 전통을 서구 추상미술과 결합한 독특한 작품을 이어왔다. 2018년 영국 런던 화이트 큐브, 2019년 독일 랑겐 파운데이션, 2020년 미국 뉴욕 힐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지난 2017년 ‘종이, 먹, 그을음: 그 후’전 이후 3년만의 개인전이다. 작품의 밀도가 더해졌고, 주제는 다양해졌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3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