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회관, 덕적도 성당, 갈대군락지, 능동자갈마당-
덕적도의 밤을 밝히는 불빛을 따라 호박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원래 노인회관으로 쓰였던 공간인데, 옹진군 도서특성화 시범마을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카페로 리모델링하여 단호박을 저장하는 창고 및 가공시설, 건조실, 카페 등으로 만든 곳이다.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호박 조형물이 손님들의 시선을 끌었다. “덕적도에 오면 좋은 곳이 많지만 제가 꼭 안내하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호박회관입니다. 와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글쎄요, 사실은 저녁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막상 여기 와 보니까 뭔가 호박과 관계된 것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연재화 대표가 안내한 호박회관은 호박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호박과 관련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호박찐빵, 호박양갱, 호박찰떡, 호박쿠키 외 호박을 이용해 개발한 다양한 음료도 있었다.
북적북적 호박회관의 모든 음식·음료는 순수 덕적도에서 직접 생산된 호박 중에서 특별히 엄선된 될성부른 “특급”호박 단호박만을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믿고 드셔도 됩니다.
벽면에 쓰인 글씨를 읽고 매장을 둘러본 후, 호박회관의 주인장(이현주 대표)에게 음료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장은 호박의 달큼한 맛이 일품이라며 호박식혜를 권했다. 유리잔에 담긴 호박식혜는 그 빛깔이 너무 고왔다. 잔을 들자 호박의 은은한 향기가 솔솔 올라왔다. 호박식혜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그리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달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맛이었다. 함께 나온 꽃모양의 양갱은 먹기에 아까울 만큼 모양이 예뻤는데 맛도 그리 달지 않고 담백하며 고소한 맛도 느껴졌다. 단호박을 넣어 만든 찰떡도 꿀맛이었다. 호박이 어떻게 덕적도의 특산물이 되었는지 그 까닭을 주인장에게 물었다. “덕적도에는 단호박 농사가 잘됩니다. 특히 덕적도에서 생산된 단호박은 해풍을 맞고 자라서 맛과 영양성분이 뛰어나지요. 그런데 단호박을 육지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2시간씩 나가야 하고 게다가 단호박은 저장성이 떨어져 판매 기간이 짧은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을 연구하여 이곳 사람들은 판매 기간을 늘리고 부가가치도 높이는 방안으로 가공상품 개발에 나섰습니다. 먼저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은 그대로 팔고 모양이나 단맛이 조금 덜한 것들은 제가 사다가 빵이나 다른 제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호박회관이라고 해서 호박 제품만 판매하지 않고 카페 뒤편에 다양한 가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여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나물, 약초, 쨈, 발효액기스 등 각종 가공품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한 가공품은 자체 브랜드인 ‘북적북적 덕적 바다역시장’ 스티커와 지역 주민들의 연락처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제품을 사 가는 사람들은 물건을 만든 판매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보고 더 믿고 안심하며 구매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호박회관은 덕적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덕적도성당은 천주교 인천교구의 17번째 성당으로 미국인 최분도 신부의 부임으로 1966년에 지어졌다. 1959년 미국 뉴욕 메리놀 신학대학을 졸업한 베네딕트 즈베버(최분도) 신부는 메리놀 외방교회 사제로 한국에 왔다. 그는 1966년 덕적도 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해 10년간 서포리에 머물면서 덕적도에 병원을 설립하고 상수도와 전기를 공급했으며 대규모 간척사업을 하는 등 덕적도 주민들의 자립과 복지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 푸른 눈의 키 작은 신부님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서포리해변 입구에 공덕비를 세웠고 그는 197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최분도 신부는 덕적도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이 낙후된 곳에 종합병원을 만들어준 고마운 분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부산 미군기지에서 발전기를 구매하고 직접 운송하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전봇대를 설치한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사람이 이 모든 일을 해낸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 그 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연 대표의 정겨운 청년 시절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창 치기 어린 18살 때 동네에 건방진 아이들이 놀러왔다는 소리를 듣고 혼내주기 위해 달려갔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얻어맞고 3시간 만에야 깨어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와서 치료를 했던 곳이 바로 이 병원이었고 눈을 떠보니 최분도 신부님이 연 대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바로 UDT(해군특수전전단)회원이었다고. 아무튼 최분도 신부님의 영향력은 마을 사람 모두에게 대부 같은 존재였다. 연 대표를 포함해 지금도 최분도 신부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분명히 그는 덕적도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고마운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간 곳은 서해 최대 규모의 갈대군락지이다. 순천의 갈대는 크고 억센데 반해 이곳의 갈대는 훨씬 여리고 하늘거렸다. “이곳은 원래 잔디밭으로 뒤덮여 있던 장소로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함께 자주 소풍을 왔었습니다. 보물찾기도 하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놀다가 배고프면 어머니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기다리시는 곳으로 가서 김밥을 먹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연 대표는 추억을 소환하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누군가에게는 절경을 선사하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장소인 갈대밭,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을 한없이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문득 신경림 시인의 <갈대>가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살아가면서 속으로 조용히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실 갈대는 문학 소재로도 많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갈대는 억새가 그 이름이며, 갈대는 오히려 억새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큼 크고 억센 포아풀과에 속하며 습한 땅에 많이 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정오의 태양이 갈대밭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검은 자갈이 해변에 널린 능동 자갈마당은 덕적도 진리선착장에서 북으로 8킬로미터쯤에 있다. 건너편에 선미도가 자리 잡고 있어 저녁 일몰의 광경이 아주 황홀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해변이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세월 파도에 씻겨 곱게 다듬어진 자갈들의 크기는 주먹만 한 것에서 손톱만 한 것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다. 여행객들이 저마다 개성을 담아 쌓아놓은 돌탑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기암괴석들이 저마다의 위용을 뽐내며 서 있고, 서해 최대 규모인 갈대군락지까지 어우러져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능동자갈마당에서는 해수욕과 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간혹 큰 돌 위에 붙어있는 석화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게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능동자갈마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은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낙조다. 능동자갈마당은 밀물과 썰물에 밀려 잘 다듬어진 자갈들이 맨발로 걸어도 아프지 않고 지압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장소다. 해변 한쪽에는 장군바위가 우뚝 서 있고 매를 닮은 큰 바위, 낙타바위 등 위용을 자랑하는 바위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물이 많이 빠지는 날에는 큰 바위틈에서 꽤 큰 소라를 주울 수도 있는데 반대편의 서포리 해변과 또다른 경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자갈 해변에 주저앉아 파도치는 겨울바다를 마냥 바라보았다. 파도가 칠 때마다 이리저리 구르는 자갈들 소리가 어우러져 귀를 즐겁게 했다. 아무런 상념도 떠오르지 않고, 온종일 앉아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모를 지경이었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선 바위산과 그 위에 자리잡은 소나무가 오늘따라 더 멋진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글.사진 전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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