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현대·기아차 주주라면 지우고 싶은 하루다. 계기는 개장과 동시에 올라온 현대·기아차 공시였다. 애플과 선을 긋는 공시 내용에 주가는 개장 직후부터 하락을 면치 못했다.
여기서 궁금한 점, 애플 주가는? 그리고 애플은 공시를 왜 안 냈을까?
◆상승세의 차이
우선 주가 추이를 보자. 최근 6개월 한 현대·기아차는 마치 딴세상 주가인 듯했다. 8월에 현대차는 17만원, 기아차는 4만6000원대였다. 8월 말에는 15만원대, 4만원대까지 떨어진다.
이랬던 현대기아차가 급등한 건 1월에 들어서면서다. 애플과 애플카에 협업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현대차는 단숨에 20만원대를 돌파했고, 기아차도 6만원을 넘어섰다. 현대차는 28만9000원(1월 11일), 기아차는 10만2000원(2월 5일)으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6개월 동안 현대차는 90% 이상, 기아차는 120%나 주가가 뛰었다. 전기차에 애플까지 더한 효과였다.
같은 기간, 애플 주가를 살펴보자. 애플도 작년 8월 말 주가는 112달러였으나,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1월 말엔 140달러까지 뛰었다. 하지만 현대 기아차와 비하긴 힘들다. 8월 말과 최고점을 비교하면 25%가량 상승했다. 그나마 2월 들어선 상당 부분 상승 폭을 반납했다. 현 주가는 작년 8월 말 수준과 비슷한 정도다.
현대·기아차가 공시를 발표한 8일의 경우 애플 주가는 0.31% 소폭 하락했다. 실제 현대·기아차 공시가 발표된 장외 거래 시간에서도 주가는 큰 변동이 없었다. 기아차는 이날 14.98%, 현대차는 6.21% 하락한 채 마감했다.
같은 재료이지만, 현대기아차와 애플 주가가 받는 영향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나스닥 시가총액 1위(2571조원)의 애플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래도 씁쓸한 맛은 있다.
◆韓美 공시제도 뭐가 다를까
현대차가 공시를 내고 애플은 공시를 안 낸 이유를 알려면, 우선 양국 간 공시제도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은 공시를 해야 할 항목을 열거해서 공시를 하는 ‘열거주의’ 방식이다. 어떤 사항에 대해선 공시를 해야 한다는 걸 열거해놨다는 의미다. 상당히 구체적이다.
미국은 이와 달리, 한층 기업에 자율권을 주는 방식이다. 주가에 영향을 끼칠 중요한 사항이라면 상장사가 알아서 공시를 하되, 실제 주가 변동에도 불구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사후 처벌을 내리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에 한해 공시하라고 열거하지 않고, 주가에 영향을 끼친다면 공시하라는 의미다. 포괄적 공시제도로 불린다.
국내 공시제도엔 조회공시가 있다. 언론 보도의 사실 여부로 기업 주가에 현저한 변동이 발생하면 거래소가 답변을 요구하고 기업은 이에 응해 답변을 공시하는 제도다. 요구 시점이 오전이면 당일 오후, 오후라면 익일 오전까지 답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한국은 사전 규제 성격이 강하고 미국은 사후 규제 성격이 강하다.
◆침묵의 애플, 주가 변동에 큰 변수 아니다
이번 현대차의 경우, 거래소로부터 공시 요구를 받기 전에 먼저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으로 자율 공시했다. 설사 그렇지 않았더라도 워낙 주가가 크게 움직였던 만큼 거래소의 조회 공시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예 한발 앞서 먼저 자율 공시를 택한 셈이다.
현재까지 애플의 유일한 공식 입장은 아무런 공식 입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이번 사안을 주가에 큰 변동이 미칠 사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란 해석을 내놨다. 실제 애플 주가는 현대·기아차 이슈에 따라 주가가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또 하나 해석이 있다. 설사 주가가 요동쳤더라도 애플은 현대·기아차와의 협력 여부가 중요한 사업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공시를 하지 않았더라도 공시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해석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참고로 애플은 2011년 7월께 “최고 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의 차기 후보자를 내부에서 물색중이고 관련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는 요지의 공시를 낸 적 있다. 당시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란 소문이 확산되자 이 같은 공시를 발표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부재를 주가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칠 공시 대상으로 판단했고, 현대기아차와의 협력설은 그렇지 않다고 본 셈이다.
◆애플의 기밀주의
애플의 ‘기밀주의’는 유명하다. 이번 현대기아차와의 협력 여부는 블룸버그 통신을 비롯, 세계 주요 매체가 비중있게 다뤘다. 사실 애플 입장에서도 그냥 무시할만한 풍문 정도로 여기긴 힘든 비중이다. 그럼에도, 공시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는 건 그만큼 내부 기밀 사항이 언론에 노출된 데에 크게 반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의 뜨거운 관심도 애플로선 부담일 수 있다. 지난 1월엔 팀쿡 애플 CEO가 양재동에서 족발을 먹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애플 일거수일투족에 쏠리는 국내의 뜨거운 분위기는 애플코리아를 통해 속속 본사로 보고된다.
한편, 이날 공시 이후 현대차그룹주는 하루 만에 시총이 13조5000억원 감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