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처음이라] 거리두기가 미덕이었던 2020년에 인생의 ‘처음’을 겪은 이들은 작년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또 새해에 기대하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전합니다. 이번주는 작년에 서로다른 배경으로 창업에 도전한 두 사람을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한 사람은 10년 요리경력을 바탕으로 을지로에 자기 식당을 냈습니다. 다른 이는 취업준비 기간을 활용해 온라인 창업을 시도했습니다. 이들이 각자 경험한 기쁨과 좌절, 성취는 코로나 1주년이 된 우리사회의 단면 가운데 일부입니다.
〈3〉 생애 첫 코로나, 내 사업을 시작했다
① 작년 힙지로에 입성한 김선규(33) 사장의 이야기
인쇄소가 즐비하던 을지로의 오래된 거리는 이제 ‘힙지로’라 불린다. 여기엔 젊은 나홀로 사장님들이 많다. 대개가 생애 첫 창업이다. 회사 관두고 와인바를 차린 사람이 있고, 돈 모아 자기 가게를 차린 사람 배경은 다양하다.
혼자서 가게를 꾸려나가는 사장님들은 자연스럽게 뭉쳤다. 지난해 광복절 지나고 왕래가 잦던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야 이러다 굶어죽겠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졌다. 을지로 막내 사장 격인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살 아닌가, 한 달 매출 깎였다고. 자영업 다 리스크 안고 하는건데.’ 해가 바뀌었다. 동료 사장들의 ‘죽겠다’ 소리는 더 거세졌다. 내 생각도 달라졌다. ‘이젠 엄살이 아니다.’
롤러코스터
을지로 옛 명보극장 건너편 골목에 테이블 10개쯤 되는 식당을 열었다. 코로나19의 기운이 전국으로 번지던 작년 5월 초였다. 피자와 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을 낸다. 지난 10년 사이 10곳 넘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쌓은 역량을 쏟아부었다. 대표메뉴는 참치피자. 생참치와 피자반죽의 조합에 손님들은 ‘과연 맛있을까’하는 눈초리를 보이지만 대부분이 깨끗하게 접시를 비운다.
새로 문을 열고 드문드문 찾아오던 손님들은 7월에 크게 늘었다. 예약 일정을 적어둔 달력을 보니 그달 예약만 100건에 달했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나조차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 중엔 이름 대면 누구나 알 대기업 회장님도 있었다. 그는 일행들과 와인 2병을 비웠다.
흐뭇한 흐름은 8월에도 이어지는가 싶더니, 광복절을 기점으로 예약이 뚝 끊겼다. 초보 자영업자의 심정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진짜 문제는 최대 대목인 연말이었다. 12월을 넘어서니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찍었다. 5명 이상 모임에 빗장이 내려지니 12월 마지막 일주일에 빼곡했던 단체 예약이 속절없이 취소됐다. 12월 월매출 400만원. 이것저것 떼고 나니 남은 게 없었다.
1월의 손익계산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가 없다. 사흘의 영업일은 남겨뒀지만 매출은 300만원. 단 한 명의 손님도 들지 않았던 날만 이틀이다. 알바생하고 둘이서 가게를 지켰다. 오픈했던 달의 실적보다 나쁘다.
총력전
애초엔 공동경영을 계획했다. 먼저 을지로에 들어와 식당을 꾸리던 고등학교 친구는 나에게 와인바를 내보자고 제안했다. 이게 ‘이젠 남의 가게 그만 전전하고 내 사업을 하자’는 열망에 기름을 부었다. 2019년 말, 둘이서 3000만원씩 자본금으로 댔다. 작년 2월에 가게 자리를 계약했다. 권리금과 보증금 각 1000만원, 월세 120만원이었다.
하지만 의기투합은 머지않아 깨졌다. 가게 인테리어 구성, 서비스 계획을 보는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다. 토론은 점잖은 말다툼으로 이어졌고, 소리지르며 격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냥 엎자.” 내가 말했다. “그럼 돈 내놔.” 친구는 자본금 중 자기몫을 요구했다. 일단 1500만원을 그 자리에서 쐈다. 호기롭게 홀로 나섰지만 비상이었다. 여윳돈이 부족했다. 불광동 자취집 보증금(2000만원)을 뺐고 청약통장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 모아둔 3600만원을 모두 털었다. 그러모은 자금으로 겨우 가게 수리공사를 벌였다.
집 보증금까지 가져다 썼으니 당장 지낼 곳이 필요했다. 을지로에 게스트하우스를 가지고 있던 동료 사장님이 기꺼이 방을 내줬다. 30만원을 드리고 공사기간 내내 살았다.
소망
자영업자를 겨냥한 지원 프로그램은 모조리 이용했다. 소상공인 대상으로 나온 1%대 저금리 이차보전대출로 6000만원을 빌렸다. 긴급 재난지원금도 신청했다. 이걸로 기존 대출을 대환했다. 그러고 남은 자금은 운영비로 쓸 요량으로 쟁여뒀는데, 아마도 곧 이것마저 헐어야 할 처지다.
작년 봄 음식점을 낸다니까 주변엔 ‘경기 나쁘다’며 말리는 사람만 그득했다. 그게 내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30년 넘게 살면서 “호황이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없다. 경기는 늘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태원, 강남에 있는 이름난 식당에서 일할 땐 늘 사람이 몰렸다. “공사 마치고 자리잡히면 코로나는 끝이 나 있을 거야. 보상심리도 폭발할 거야.” 순진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이키면 내 일상이 위기여서 코로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거창한 새해 계획은 없다. 잔뜩 위축된 사람들의 마음이 풀리길 소망할 뿐이다. 우리 가게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맘껏 먹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땀을 쏟아내며 음식을 만들던 작년 여름은 나에게 자신감을 선물했다. 코로나가 없는 세상인데, 지금처럼 손님이 가물었다면 좌절했을지 모른다. 한여름밤의 꿈은 아니라고 믿는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
〈인터뷰를 마치고〉 김선규 사장은 가게 지붕에 딸린 작은 다락방에서 지낸다. 어엿한 보금자리를 구하는 것도 올해의 중요한 목표다. 고등학교 친구와는 동업을 하려다 갈라섰지만 우정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 이따금 만나 서로의 고민을 나눈다. 김 사장은 “친구는 내 가게를 열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