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담당 형사-검사 13억 900만원 배상책임 인정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위법 수사 인정”
진범 수사 제대로 하지 않은 검사도 “직무 위반 책임”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부장 이성호)는 13일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최모(36) 씨가 국가와 당시 수사담당 형사 이모 씨, 진범을 불기소 처분한 검사 김모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잘못을 인정해 최씨에게 20억원, 최씨의 모친에게는 2억 5천만원, 여동생에게는 5천만원을 각각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최씨가 형사보상금 8억4000여만원을 받는 점을 감안해 실제 지급액은 13억900여만원으로 정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이씨와 김씨도 배상액 중 3억2000만원을 함께 부담해야 한다.
“경각심 일깨울 필요 있다” 배상액 키운 법원…담당 검사·형사 책임도 인정
재판부는 손해배상액과 위자료를 정하면서 “위자료 원금의 액수를 적절히 증액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은 불법행위가 국가기관과 그 구성원들에 의해 다시는 저질러져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할 막중한 필요가 있다”면서 “최씨가 입은 피해는 평생 씻을 수 없어 원상회복되거나 결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달리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최씨에 대한 수사가 강압적이고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법원에 따르면 이씨를 포함한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영장도 없이 최씨를 여관에 불법 구금한상태에서 폭행, 협박해 자백을 받아냈다. 3일간 잠도 재우지 않고 허위자백을 받는 외에도 진술에 증거를 끼워맞춘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아무리 고려하더라도,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책임도 물었다. 최씨가 기소된 후에 받아낸 진범의 자백에 신빙성이 있고, 다른 증거와도 부합한 이상 구속 수사를 하는 게 옳았는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수사지휘를 반복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한 ‘장기간 은폐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참고인들의 진술과 피해자의 부검결과 등 다른 자료들이 있는데도, 증거관계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고 경찰의 불기소 취지 의견서만을 바탕으로 불기소 처분을 했다”고 지적했다. 비록 전임자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군산경찰서의 진범 수사를 저지했다고 하더라도 김씨가 제대로 사안을 파악하지 않고 불기소 처분한 것은 검사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15세에 수감, 10년간 억울한 옥살이… 진범은 자백에도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
최씨는 지난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최씨는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최씨가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을 하다 피해자와 시비가 붙었고, 격분한 최씨가 오토바이에 보관돼 있던 흉기로 살해했다고 결론냈다.
최씨는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5년,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03년 군산경찰서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피의자를 긴급 체포했다. 당시 진범에게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 수사지휘 과정에서 기각됐고, 결국 진범은 석방된 후 진술을 번복해 2006년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수감 당시 15세에 불과했던 최씨는 26세가 되던 해인 지난 2010년 만기 출소했다. 광주고법은 2016년 11월 최씨에 대한 재심에서 살인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는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 8억6000만원 중 10%를 진범 검거 과정에 기여한 황상민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에게 기부했고, 이후 재심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