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이후 80차례 재판출석

경영 현장보다 법정에 선날 더 많아

새해 시작되는 삼성물산 합병 재판

증거기록 방대…최대 5년 지속 가능성

재계 “정상경영 어려워…신인도 타격”

지난 4년 가까이 삼성그룹을 짓눌러온 ‘사법 리스크’가 새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재계에선 “이대로 가면 1등 기업 삼성이 ‘잃어버린 10년’이란 최대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지난 2016년 11월 이후 전례를 찾기 힘든 수사와 재판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그동안 검찰 소환조사와 구속영장실질 심사를 각각 10번, 3번 받았다. 특검에 기소된 이후 재판에 출석한 횟수도 무려 80여 차례가 넘는다. 국내외 사업장을 찾아 현장 경영을 하거나, 해외 정상 또는 기업인과 만나 사업 협력을 논의한 날보다 법정에 선 날이 더 많았다.

여기에 검찰은 그동안 삼성그룹에 50여 차례 압수수색을 했고, 전·현직 임직원 110여 명을 대상으로 430여 차례 소환 조사를 벌였다.

당장 1월 18일엔 이 부회장의 국정 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 선고가 끝나면 또다른 재판이 삼성을 기다린다. 경영권 승계 문제 관련 사법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삼성물산 불법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과 관련한 내용으로, 기존 국정농단 사건과 비교하면 사안이 훨씬 복잡하고 증거기록도 방대하다. 법조계에서는 최종 대법원 선고까지 최대 5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두 재판의 기간을 더하면 최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법리스크가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제계 고위 관계자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 삼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면서 “시장 선점은 고사하고 자칫 기회 상실로 글로벌 경쟁 대열에서 낙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삼성과 국내 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영 환경은 그야말로 ‘시계제로’ 상황이다. 당장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한·일 외교갈등, 중국 IT 기업의 맹추격, 4차 산업혁명 글로벌 경쟁 심화를 비롯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 이에 따라 삼성의 주력사업 부문이 이전처럼 계속 선방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어려운 상황일수록 ‘결단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재계와 학계에서는 사법 리스크 장기화로 인해 이 부회장의 리더십 부재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존 삼성이 구성하고 있던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 등 초대형 사업 구상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규모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 글로벌 인수·합병(M&A) 작업도 사실상 멈춰선 지 오래다. 삼성은 2016년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 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6000억원)에 인수한 뒤 눈에 띄는 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현대차·SK·LG 등 대기업 총수들이 대형 글로벌 M&A 등을 진두지휘하면서 적극적으로 ‘미래 먹거리 찾기’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여기에 사법 리스크로 삼성의 글로벌 이미지도 타격을 받아 향후 삼성이 글로벌 투자나 M&A를 추진할 때 대외 신인도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2021년 전 세계에 법정에서 열릴 화제의 재판’에 이 부회장 사건을 포함시켰다.

블룸버그 측은 “삼성그룹 설립자의 손자인 이 부회장이 2가지 재판을 받고 있다”며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수단이 쓰였는지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고, 이번 법적 논쟁이 수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이) 여전히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어 앞으로 경영활동에 큰 어려움 있을 수 밖에 없고,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 상황에서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정부에 휘둘릴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양대근·정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