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 피한 꼼수 등장 곳곳 마찰
임대차 기간 관련 상담 가장 많아
#. 내년 3월 전세임대가 끝나는 세입자 A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계약갱신을 청구하겠다고 했으나 집주인은 직접 거주하겠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새 전셋집을 찾던 중 집주인이 공인중개업소에 월세로 내놓은 것을 알게 됐다.
#. 월세로 살고 있는 B씨는 2년 계약을 연장하면서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3000만원의 5% 인상과 별도로 관리비를 월 5만원씩 더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새로 집을 구해 이사하기가 막막해 울며 겨자먹기로 수긍했으나 부담스럽다.
개정 임대차보호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에 따른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가 해설집까지 내놓았으나 사례가 방대한 데다 법망을 피해 가는 ‘꼼수’가 등장하면서 시장에선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23일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따르면 임대차 분쟁 관련 상담은 올 8월 이후 11월까지 월평균 4978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2100건)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후 상담이 늘었는데 특히 계약갱신청구권 관련 건이 많다”고 전했다.
범위를 전국으로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는 지난 8~11월 총 3만2930건의 임대차 관련 상담이 접수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만3418건)보다 40% 이상 많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임대차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임대차 기간, 임차보증금·차임 증감에 대한 상담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임대차 기간 관련 상담은 지난해 8~11월 1340건에서 올해 5758건으로 338.1%, 임차보증금·차임 증감 관련 상담은 같은 기간 226건에서 990건으로 329.7% 늘었다.
반면 평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온 임차보증금 반환 관련 상담은 3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집주인이 이면계약을 주문했다거나 세입자가 이사비·위로금을 요구했다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세입자에게 불리하지 않아야 하지만 임대인에게도 야박하지 않아야 관리비를 올리는 등의 ‘꼼수’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임대인이 적정 임대수익을 유지하며 정부가 원하는 임차인 보호를 해줄 수 있도록 구조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택 유지보수비를 필요경비로 인정해 세액공제하거나 보유세·임대소득세를 감면하는 등 임대인을 위한 추가 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사전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 마찰에 대응하다 보니 갈등이 심화됐다”면서 “추가 대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