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사회부장]“국정감사장에 가면 무조건 세마디만해야 합니다. 다른 말 하면 안돼요. ‘존경하는 의원님’, ‘잘 알겠습니다’, ‘시정 검토하겠습니다’라는 말만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쳐요. 하하하.”

국감에 증인으로 서본 어느 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서 들은 말이다. 고압적인 국감장일지라도 좋지 않은 기분을 내보여선 안되고, 특히 ‘하늘같은 의원님’께 토를 달아선 절대 안되며 그냥 ‘예’, ‘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국감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이번 국감 역시 그랬다. 국감의 마지막날인 27일, 이번 국감을 돌아볼때 고성과 고함은 여전했고 의원들은 국감 증인을 불러세우고 윽박 지르기만 했다. 특히 국감 증인들은 몇분, 몇초 답변을 하려고 하루종일 대기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재미있는 분석도 나왔다. 동아일보가 이번 국감에서 일반증인으로 채택된 이들 가운데 임원급 이상 기업인과 주요 현안 관련자 등 주요 증인 20명의 답변 시간과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1인당 평균 답변시간은 3분 18초에 불과했다. 20명 가운데 답변 시간이 5분 미만이었던 증인은 80%(16명)나 됐다. 분석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증인 가운데는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모두를 대상으로 들여다보면 답변 시간은 더 짧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어떤 이는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증인장에서 서서는 15초 답변을 끝내야 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말한마디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물론 질문과 답변은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문제는 국감 증인을 세우는 국회의 위압적 태도다. 무조건 부르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호통치고, 윽박만 지른다. 말도 되지 않은 논리로 몰아세우는 의원도 있다. 국감 증인은 의원들에겐 야단치는 대상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위엄을 높일 수 있는 영원한 을(乙)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고보니 국감장에 불려나가는 이들은 ‘고양이 앞 쥐’ 신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국감에서는 일반증인 202명, 일반 참고인 110명, 기업단체 증인 109명, 기업단체 참고인 12명이 채택됐다고 한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국감에 불려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만 많이 불렀고, 예전보다 요란한 소리만 냈지 알맹이는 없었다. 예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래서국감무용론은 꽤 공감을 얻고 있다.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국감은 세월호 참사, 공무원 연금 등 화두가 많아 기대가 컸었다. 세월호의 이면을 국감장에서 파헤쳐주길 바랬고, 공무원연금 개선 방향을 일정 부분 제시해 주리라는 믿음도 작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정책 질의나 현안 파헤치기는 없었고, 예년의 구태를 반복했다.

국감은 말 그대로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해 행하는 감사다. 비리가 있는 곳이라면 날카롭게 칼을 들이밀고, 기관이든 기업이든 허점이 있으면 해부하고, 잘못된 정책이 있으면 재해석을 해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다.

존재 이유가 없는 국감이 내년에도 재현되는 것은 국민들에겐 악몽이다. 국감을 없애든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저질 국감을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 처방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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