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0대 유통기업 상반기 이익률 전년比 50% 이상 증가

美 상위 20개 유통기업 근로자 평균 126일간 위험수당 無

일자리 감소·최저임금 10년째 제자리…유색인종 생활 악화

‘공화 vs 민주’ 정쟁에 필수노동자 위험수당 논의 실종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식당 종업원 등 필수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상승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필수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대형 풍선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식당 종업원 등 필수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상승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필수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대형 풍선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가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수적인 일을 수행하는 직종에 종사 중인 사람들. 바로 ‘필수노동자(essectial worker, key worker)’다.

보건 의료·환경미화·배달·돌봄 부문 등에서 일하는 이들은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업무가 기본인 현장을 지킬 수밖에 없다.

팬데믹 초 미국에선 필수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종 제도와 금전적 지원 방안이 제안됐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 팬데믹이 장기화 하자 조금씩 그들에 대한 관심은 식어갔다. 지지부진했던 논의들도 결론 없이 흐지부지됐다.

미국 대표 기업들이 코로나 덕분에 때아닌 돈잔치를 벌이는 현실 속에, 경제 구조 맨 밑에서 이를 떠받쳐온 필수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고용 안정성 악화와 대가가 따르지 않는 위험 노출, 취약한 근무 여건과 낮은 임금에 허덕이는 역설적 상황뿐이었다.

‘필수’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외되고 있는 그들의 상황을 워싱턴포스트(WP)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필수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잊혔다고 느끼고 있다(Essential worker feels forgetten).”

코로나 덕에 돈 버는 업체들…‘위험수당’엔 인색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터널이 이어지며 수많은 기업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거나 최악의 경우 파산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형 소매업계들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다. 도리어 이들 기업들은 ‘코로나 특수’로 불리는 호황을 맞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로 인한 온라인 쇼핑 활성화 및 식료품·생활 필수품 구매 활성화 덕분이다.

대표적인 수혜 기업은 아마존이다. 3분기 매출은 961억5000만달러(약 110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37%나 늘었다. 전문가가 예상했던 927억달러(약 105조원)를 상회하는 결과다.

아마존은 올 4분기 매출도 1120억~1210억달러(약 128조~137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8~3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워싱턴주 켄트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필수노동자 중 하나인 화물 운송 관련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미국 워싱턴주 켄트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필수노동자 중 하나인 화물 운송 관련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세계 최대 유통 업체인 월마트도 2분기 매출액이 1377억4000만달러(약 156조원)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고, 1~6월 기준 전년 대비 7.2% 매출 상승을 기록했다. 미국 3위 유통업체 크로거도 1~6월 기준 전년 대비 매출이 10% 늘었다.

이 밖에도 미국의 집 수리 용품 판매회사 홈디포도 같은기간 380억5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3.4% 증가했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내 상위 10대 유통기업의 올 상반기 이익률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정작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이들 기업의 물류 창고, 계산대 등에서 일하고 있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대형 유통기업들은 지난 여름까지 지급하던 위험수당 지급을 조용히 끝내고 있다.

미국 내 상위 20개 유통기업의 근로자들은 평균적으로 최근 126일간 코로나19 위험수당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 가운데 지금까지 필수노동자들에게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곳은 홈디포가 유일하다.

워싱턴DC 외곽에 위치한 미국 수퍼마켓 체인 ‘자이언트 푸드’의 육류 점원인 제프리 리드 씨는 “지난 6월부로 시간당 10%씩 지급되던 위험수당 지금이 중단됐다”며 “여전히 코로나19 유행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들(필수노동자들)의 희생은 계속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K자 회복’ 현실화…인종 따른 빈부격차 문제까지

위험수당 중단은 필수노동자들이 처한 경제적 위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글로벌 시장분석업체인 에버코러ISI의 조사에 따르면 8월 시간당 임금이 16달러(약 1만8000원) 이하인 노동자 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월에 비해 26.9% 감소했다. 일자리가 다시 늘고 있다는 각종 통계가 나오는 가운데서도 필수노동자 등 저소득층의 일자리 수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내 대표적인 저임금 필수노동자. [브루킹스연구소]
미국 내 대표적인 저임금 필수노동자. [브루킹스연구소]

10년째 7.25달러(약 8225원)로 고정된 명목 최저임금 탓에 필수노동자 등 저소득층의 실질적 생활 수준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미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생산성과 동반 상승했다고 가정할 경우 현재 적절한 최저임금 수준을 20.34달러(약 2만3076원)로 추산했다. 실제 기준의 약 2.8배에 이른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팬데믹 속에 현장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필수근로자들에게 위험수당 지급은 비록 적은 액수일지라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 중단은 미국 내 구조적인 인종 간 불평등 문제로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2018년 기준 흑인과 라틴계 노동자들은 미국 전체 노동자의 13%, 16%를 차지했지만, 필수노동자 수의 각각 19%, 22%를 차지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에서 필수노동자 중 하나인 계산원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하고 있는 모습. [AP]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에서 필수노동자 중 하나인 계산원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하고 있는 모습. [AP]

특히, 이들의 약 3분의 1은 집세나 대출금을 지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몰리 킨더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저임금 필수노동자 사이에서 흑인과 라틴계 등 유색 인종의 비중은 과잉 대표되고 있다”며 “위험수당 지급 종료 등 필수노동자를 위한 각종 대책의 중단은 유색 인종 노동자들의 생활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화 vs 민주’ 정쟁에 휩쓸려 실종된 위험수당

미 의회에서도 코로나19 위협에 노출된 필수노동자들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대선 기간 격화 한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정쟁에 휩쓸려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미 의회서 발의된 코로나19 부양법안 및 필수노동자 위험수당 관련 논의. [브루킹스연구소]
미 의회서 발의된 코로나19 부양법안 및 필수노동자 위험수당 관련 논의. [브루킹스연구소]

지난 5월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통과된 3조달러(약 3404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 ‘히어로즈 법(HEROES Act)’은 공화당 우위의 상원에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이 법안 속에는 필수노동자들의 위험수당을 위한 2000억달러 규모의 지원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필수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제안되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미트 롬니 상원의원이 나서 시간당 최대 12달러에 이르는 임시 보너스를 주는 ‘애국 급여(Patriot Pay)’ 지급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같은 당 동료 상원의원들에게서 외면받았다.

지난 7월 공화당에서 코로나19 부양책으로 내놓은 1조1000억달러 규모의 ‘힐스 법(HEALS Act)’엔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위험수당은 완전히 배제됐고, 공공 부문 필수노동자 지원을 위해 각 주(州)와 지방 정부 예산을 보강하는 방안 역시 제외됐다.

연방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주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나서 생활고에 빠진 필수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정부는 20달러 미만의 시급을 받는 4만명 이상의 필수노동자들에게 10주간 시간당 3달러씩 임금을 인상해 제공했다.

버지니아·뉴햄프셔·미시간·버몬트주 등에서도 주정부 예산을 투입해 필수노동자들을 위한 위험수당을 제공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외곽에서 간병인으로 근무 중인 욜란다 로스 씨는 “비록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잊힌 채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필수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소에서 한 간호사가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소에서 한 간호사가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

하지만, 재원이 충분치 못한 주정부 차원의 지원책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의회가 코로나19 경제 구제 방안을 마련할 때 누구보다 저임금 속에도 노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필수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과감한 정책 방향 변화도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