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업체에 가려져 해외공장 스톱

대기업 계열사도 유동성 확보 안간힘

‘유가급락’ 태양광 생태계도 붕괴위기

#. 대구의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 A사는 이달부터 직원들이 조를 나눠 2주씩 무급휴직을 시행 중이다. 공장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발주도 끊겨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자 내린 고육책이다. A사는 정부지원을 기대했지만 중견기업이라 탈락했다. 국책은행이 나서는 채권시장 안정펀드도 신용등급이 AA- 이상인 기업이 대상이라 지원에서 빠졌다. 심지어 대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매출 규모 탓에 특별재난지역 기업들에 지원되는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코로나19 위기가 산업계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애매한 ‘덩치’를 갖춘 중견기업은 오히려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해 지난 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코로나19 위기 지원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창업·벤처기업으로까지 지원 범위를 넓혔지만,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맞춤형 지원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중견기업은 3년 평균 매출이 업종별로 400억~1500억원이상이면서 자산은 5000억원 이상인 기업을 칭한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연합회 소속 560여개 회원사들 대부분이 투자를 위해 끌어온 부채에 따른 현금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으며, 정부의 지원 의지에도 불구하고 일선 은행 창구의 보수적인 여신 집행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27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굴지의 글로벌 가전 기업에 가려진 중소가전사들의 경영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중견가전사 B사는 임직원들의 순환 무급 휴직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해외 매출 비중이 80%에 달하는데, 최근 해외 현지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매출이 급감하자 선제적인 비용 절감 조치를 단행했다. 판매 대금 현금의 유입 급감 속에, 이 회사는 해외 공장의 가동 시기 만을 고대하고 있다. 중견그룹사에 포함된 탓에 당장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또한 쉽지 않은 상태다.

이같은 중소 가전업의 위기감은 최근 중소기업연구원의 조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중기연이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67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 중 코로나19로 인해 전년 대비 매출액이 50% 이상 감소했다는 곳의 비중에서 가전업은 28%로 세번째로 타격이 컸다. 심지어 자동차(18.8%)나 석유화학·정유(13.0%), 조선(9.5%)보다 상황이 나빴다.

방위산업계 또한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다.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7대 기간 산업 지원 대책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현대로템 마저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을 매각하는 처지다. 현대로템은 지난 24일 이사회에서 경기도 의왕의 연구소 부지와 보유 투자사 지분을 그룹의 타 계열사에 매각해 1700억원 가량의 현금을 조달했다. 현재 방위산업체들은 전 세계 국가들의 재정 여력이 떨어지며 해외 발주 자체가 줄어들면서 매출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K2전차 3차 양산 사업에 뛰어들었던 현대로템과 1100여개 부품업체들은 3차 양산 사업 착수 협의회를 열고 정부에 관련 예산의 조기 집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전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각국의 국방력 투자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발주가 늦어질 경우 부품업계에 특히 심각한 매출 타격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중견사와 중소사들이 다수 포진한 레미콘업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인한 건설 시장 침체에 코로나19까지 겹치자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극심했던 3월 수도권 레미콘 출하량은 219만8156㎥(건설회사 자재직 협의회 통계 기준)로 전년(235만6331㎥)과 비교해 7%가량 감소했다. 코로나19가 가장 심했던 대구 지역에서는 한 달여간 레미콘업체 22곳이 휴업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육성으로 기대감이 높던 태양광 산업 생태계도 규모를 불문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굴지의 태양광 제조 기업인 OCI와 한화솔루션이 폴리실리콘의 국내 제조에서 철수할 정도로 국내 상황은 특히 열악하다.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소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 건설 또한 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 급락의 악영향을 받고 있다. 생산한 전기를 판매하는 가격인 국내 전력도매가격(SMP)이 유가와 연동해 떨어지자 소규모 태양광 발전 회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순식·원호연·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