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박영서 특파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阿里巴巴)의 뉴욕 증시 상장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하다. 이번 알리바바의 기업공개(IPO)로 가장 주목을 받은 이는 창업자겸 이사회 주석인 마윈(馬雲·50)회장이다. 마윈은 알리바바를 오늘날 세계 최고 가치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결코 성공의 길을 곧바로 걸어온 것은 아니다. 포브스중문판이 21세기 인터넷 세상이 낳은 최고의 ‘기린아’ 마윈의 일생에 가장 중요했던 20개의 순간들을 정리했다.
1. 영어교사=1984년 삼수끝에 항저우사범학원 영어학과에 입학했다. 짐꾼, 삼륜차 운전 등 낮에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1988년 졸업을 한후 항저우전자과학기술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마윈의 영어능력은 그의 창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2. 통역사업=1992년 마윈은 ‘하이보(海博)번역’이라는 통·번역사무실을 차렸다. 첫번째 창업이었다. 그러나 첫달 수입은 불과 700위안(약 12만원)이고 사무실 월세가 2000위안(약 34만원)이었으니 적자였다. 마윈은 노점에서 꽃도 팔고 선물용품 등도 팔면서 간신히 사업을 지탱해 나갔다.
3. 인터넷=“항저우에서 영어를 가장 잘한다”는 명성을 얻은 마윈은 저장(浙江)성 교통청이 미국 기업과의 분쟁협상에서 통역업무를 요청하자 1995년초 미국 시애틀로 출장을 가게된다. 미국 출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했다. 인터넷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길로 돌려놨다. 귀국 후 아내, 친구와 함께 2만위안(약 338만원)을 모아 기업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하이보네트워크(海博網絡)‘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실패했다.
4. 중국 대외경제무역부=1997년 베이징으로 올라가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의 일을 돕게된다. 대외경제무역부의 공식 사이트 개설과 산하 무역업체간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맡게된다. 여기서 마윈은 제조업체와 무역업체들간의 전자상거래 필요성을 절감한다.
5. 알리바바 창업, 손정의의 투자=1999년 4월 기업간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 닷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본금 50만위안(당시 8460만원)의 이 회사는 ‘18나한’으로 불리는 아내, 직장동료, 친구 등 18명의 공동창업이었다. 사업 초기 마윈은 자금조달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1999년 10월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달러를, 2000년 1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회장으로부터 2000만달러의 투자금을 각각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6. 포브스=2000년 7월 미국의 경제전문잡지 포브스는 마윈을 표지인물로 채택했다. 마윈은 중국 대륙 기업인 가운데 최초로 포브스 잡지의 표지모델이 됐다. 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됐다.
7. 타오바오(淘寶)=2003년 5월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를 만들었다. 수수료를 없애고 무료광고를 허용하면서 ‘이베이’의 공세에 맞섰다. 이를 위해 마윈은 해마다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 타오바오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8. 야후=마윈은 자금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2005년 알리바바는 야후로부터 10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투자와 야후중국의 자산을 받아들인다. 마윈은 이를 위해 알리바바의 40% 지분을 내놓는다.
9. 웨이저(衛哲)의 사퇴=온라인 사기판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 제기가 많아지자 알리바바는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결과 공급업체들의 사기혐의를 포착했고 일부 직원이 실적을 위해 이를 방조한 것을 밝혀냈다. 2011년 마윈은 고객에 대한 신뢰를 지키지않았다는 점을 들어 웨이저(衛哲) 최고경영자(CEO)를 사퇴시켰다.
10. 홍콩 상장=2007년 11월 마윈은 알리바바의 B2B(기업과 기업간 거래) 사업을 분리시켜 홍콩에 상장시켰다. 시가총액은 한때 26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B2B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두달만에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11.타오바오의 굴기와 텐마오(天猫)=지난해 타오바오를 통해 성사된 온라인 거래액은 1조1000억위안(약 186조원)으로 중국 전체 전자상거래 시장의 71.4%를 차지했다. 2010년 11월 톈마오가 타오바오에서 분리·독립해 독자적인 B2C(기업과 개인간 거래)플랫폼을 구축했다.
12.투쟁=2010년부터 알리바바와 야후 간 모순은 격화되기 시작한다. 마윈은 야후가 가지고있는 알리바바 지분을 사들이기위해 협의에 들어갔지만 야후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야후는 알리바바 이사회에서 발언권을 한층 높여갔다.
13. 즈푸바오(支付寶)와 VIE논쟁=2011년 마윈은 이사회 승인없이 즈푸바오(알리페이)의 지분을 알리바바에서 분리해 분사시켰다. 알리바바의 대주주인 야후와 소프트뱅크는 분노했다. 마윈은 중국 당국의 규제 때문에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 자산의 외국인 소유를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서구 국가에 상장한 많은 중국기업들은 ‘변동지분실체(variable interest entity·VIE)’ 방식으로 이 문제를 피해가고 있다. ‘VIE’란 지분관계가 아닌 용역ㆍ기술ㆍ임대 등 계약을 통해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마윈의 발언은 중국기업들이 사용하는 VIE구조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면서 주가하락을 촉발시켰다.
14. 타오바오 소상인들의 반발=2011년 10월 타오바오 몰이 판매자 이용료를 인상하자 소상인들이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타오바오 몰 내의 유명 브랜드 수십 곳을 상대로 한번에 많은 주문을 했다가 취소하거나 환불조치를 요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이트 운영에 장애를 조성했다. 마윈이 직접 나서 사과하면서 사태는 진정됐다.
15. 알리바바 닷컴의 사유화=2012년 2월 알리바바그룹은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닷컴 주식을 주당 13.5 홍콩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B2B 사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알리바바닷컴을 홍콩증시에서 상장폐지시켜 사기업화하기로 한 것이다. 주식매입을 위해 마윈은 190억홍콩달러를 썼다.
16. 야후 소유의 알리바바 지분 매입=2012년 5월 알리바바는 야후가 갖고있던 자사 지분 20%를 71억달러에 다시 사들이기로 야후와 합의했다. 야후는 현금 63억 달러와 8억 달러 규모의 알리바바 신규발행 우선주를 받고 보유한 지분 20%를 알리바바에게 넘겼다.
17. 마윈의 CEO 사직=2013년 1월 알리바바는 7개 사업부서를 25개 사업부로 조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월15일 마윈은 알리바바그룹의 CEO 직무를 사직한다. 3월 루자오시(陸兆禧) 수석부사장이 알리바바의 CEO를 맡게됐다.
18. 차이냐오(菜鳥)네트워크=은퇴한 마윈은 5월 차이냐오네트워크를 설립해 물류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중국 대륙을 24시간 배송체제로 묶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19. 광저우헝다(廣州恒大) 축구단=2014년 5월 마윈은 축구구단 광저우헝다의 지분 50%를 12억위안(약 2030억원)에 인수했다.이 거래는 불과 15분의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다. 마윈은 이번 투자를 크게보면 중국 축구에 대한 투자라고 말했다.
20. 뉴욕증시 상장=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거래소에 상장한 알리바바는 공모가 68달러를 크게 웃도는 92.70달러에 첫 거래를 시작해 93.89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알리바바 상장으로 마윈은 중국 최고 부호 자리에 올라섰다.
/pys@heraldcorp.com
<표>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약력
▶1964년 저장성 항저우 출생
▶1984년 항저우사범학원 영어학과 입학
▶1992년 하이보번역사 창립
▶1995년 하이보네트워크 창립
▶1997년 중국대외경제무역부 국제전자상거래센터 설립
▶1999년 알리바바 창립
▶2003년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 설립
▶2013년 알리바바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임
▶2014년 9월 알리바바 뉴욕증시 상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