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지난 2011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김연아는 한폭의 수묵화같은 검은색 의상을 입고 ‘오마주 투 코리아’에 맞춰 우아한 동작을 선보였다. 전세계인들이 귀 기울였던 ‘오마주 투 코리아’ 속 구음(口音)을 부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이주은(42) 명창이 최근 사비를 털어 판소리 앨범 ‘다섯이야기’를 냈다.
가뜩이나 음반 시장이 어려운데 음반 시장의 외딴 섬과도 같은 ‘국악’ 앨범을 용감하게 발매한 것이다. 이주은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존하는 다섯 바탕의 판소리인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의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대목 5개를 앨범에 수록했다.
“처음에는 유명 음반사를 통해 앨범을 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회사의 국악 관련 파트가 사라졌다고 해서 정말 절망했죠. 중견 소리꾼인 저마저 음원을 유통시킬 수 없는 현실이 갑갑했지만 저를 바라보는 제자들을 생각하며 적금과 보험을 깨 음반을 냈죠”
흥보가와 수궁가는 어린 아이들이 들어도 재미있는 대목들을 집어넣었고, 심청가는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 춘향가는 어사출두 대목을 수록했다.
“판소리는 서양음악처럼 소프라노, 알토가 나눠져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꾼 한명이 알토부터 소프라노까지 음역대를 다 내죠. 특히 춘향가는 낮은음에서 높은음까지 통목(가식없이 쓰는 육성)으로 불러야해 숙련되지 않으면 매우 어려워요. 어사출두는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남자들이 주로 부르고 여자들은 기피하는 대목이예요. 하지만 ‘힘이 있을때 질러보자’하고 모험을 했어요”
이주은은 지난 2004년 춘향국악대전 판소리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 반열에 올랐다. 목포 출신인 그는 일곱살의 나이에 목포시립국악원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웠다. 목포에 ‘소녀 명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국악인 신영희를 따라 열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이주은은 국악 명창이 서울로 불러올린 ‘유학생 1호’였다.
“TV에서만 보던 신영희 선생님께서 오셔서 ‘나 따라서 서울로 공부하러 갈래’라고 하시는데 ‘이 사람은 거역을 못하겠구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선생님 친딸보다 더 오래 선생님과 한집에 살며 모녀처럼 지내왔죠. 소리가 맺어준 특별한 인연이예요”
얼마전 제자인 영화배우 윤기창의 지목으로 아이스버킷챌린지에 동참한 이주은은 다음 주자로 신영희 명창과 김해숙 국립국악원장을 꼽았다.
“신영희 선생님께 아이스버킷 다음 주자로 지목해드렸다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물으셔서 ‘물바가지 뒤집어쓰는 거 있잖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거 요즘 말이 많지 않냐. 물 부족 국가에서 그리 물 낭비해도 되냐고’ 이러시더라구요. 하하하”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국립국악원 이주은 명창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결국 물바가지를 뒤집어쓴 신영희 명창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기능만 있으면 뭣 할 것이냐, 기술자에 불과하지. 우리의 소리는 속에 한도 있고 흥도 있는데 그것을 나누려고 할 때는 실천을 해야하는 것이여,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물바가지 맞을란다. 내가 찍어서 보낼테니까 니가 긁어가지고 그 있지않냐, 니 정보망(페이스북) 거기 올려놓아라”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이주은은 피아노, 가요, 러시아민요, 팝송 등 다양한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대중들에게 전해왔다. 여성 가야금 4중주단 여울과 함께 팝송 ‘두 왓 유 라이크(Do What You Like)’를 판소리 버전으로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마주 투 코리아’에 삽입된 부분도 여울과 함께 녹음했던 ‘바다의 오후’라는 곡 중 일부다.
“여울이 녹음할 때 스튜디오에 놀러갔었는데 이한철 프로듀서가 ‘가야금 소리만 있으니 밋밋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소리를 한번 입혀볼까요’하고 바로 녹음실로 들어갔어요. 김연아 선수의 피겨 음악을 담당하는 캐나다인 두명이 한국적인 음악을 넣으려고 대금, 해금 연주 등 온갖 전통 음악을 다 들어보다가, 제 목소리를 듣고 ‘딱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대요”
이번에 첫 판소리 음반을 낸 이주은은 앞으로 러시아 피아니스트 빅토르 데미아노프와 함께 2집도 낼 예정이다.
“저의 기본은 전통이에요. 전통을 기본으로 다른 분야와 접합을 시도하면서 계속 완성도를 높여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년, 이년 하고 끝날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냥 머물러 있으면 고인물이 됩니다. 2집을 들으시면 ‘판소리가 피아노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라고 깜짝 놀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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