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의 ‘훈육체벌’ 친권자 징계권 삭제 아동학대방지법 개정안 등 국회서 논의 아동인권·참여권 확대, 보호출산제 도입
‘놀고 싶을 때 놀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세상’, ‘밤 늦게까지 공부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세상’ 우리 아이들이 바라는 세상이다. 또 성적에 상관없이 참여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성적을 포함한 아동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이 보호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나라 아동인권의 현주소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아동권리 스스로 지킴이’의 활동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돼 지난해 11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된 ‘대한민국 아동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금 우리나라 아동이 처한 현실은 집과 학교, 학원을 매일 챗바퀴처럼 돌면서 공부에만 매달릴 것을 강요한다. 친구관계 형성과 놀이, 여가생활 등 사회적 활동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창의성과 사회성 결여는 물론, 절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런 문제인식에서 정부는 ‘아동이 행복한 나라’라는 비전을 내걸고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23일 발표했다. 아동이 양육의 대상이 아니라 행복을 누려야 할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 정책이다. 아동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고 아동의 놀이권, 건강권, 인권 및 참여권, 보호권 등 4개 영역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2013년 10월 이서현(8) 양이 계모의 구타로 갈비뼈 16개가 부러져 사망한 사건으로 우리나라에도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사랑의 매’로 포장된 가정내 아동학대는 ‘훈육권’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신고된 부모는 2013년 5454명에서 2017년 1만7177명으로 3배이상 급증했다. 특히 2017년 두 차례 이상 신고된 ‘재학대’ 사례 2160건 중 95%가 넘는 2053건은 부모가 저지른 것이었다.
이처럼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부모인 상황에서 부모의 아동에 대한 징계권 제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대책’을 발표하면서 체벌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가정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민법상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여론 수렴에 나섰다.
현행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60년에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개정이 없었던 친권자 징계권 조항은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인용됐고, 아동복지법상 체벌 금지조항과도 상충하는 면이 있어 개정 필요성이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아동에 대한 친권자 징계권을 명문화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고, 스웨덴 등 54개국은 이미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일본도 예의범절을 가르친다면서 체벌하는 ‘시쓰케 문화’로 아동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기한 아동학대방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한국 정부에 체벌금지 법안을 만들라고 촉구했다. 이에 정부는 59년 만에 민법 조항을 개정해 부모라도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자식을 체벌할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민법상 징계권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체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며 “아동 친권자의 징계권 개정이 아동 체벌에 대한 국민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훈육 방식으로서 부모의 자녀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여전히 강해 민법에서 명시적으로 체벌권을 제외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의 일환으로 복지부는 지난 5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부모의 징계권 vs. 아이의 안전권,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제1회 아동학대 예방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체벌을 부모의 징계권에서 제외하되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는일부 행위에 예외를 두겠다는 입장이어서는 안된다”며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체벌’이라는 예외허용은 아동학대의 기로에 서 있는 부모들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내달 개최되는 제2회 아동학대 예방포럼에서도 ‘어린이집에서는 학대, 집에서는 훈육, 엄마 기준이 뭐예요?’를 주제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포럼을 통해 발표되는 사례를 바탕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차를 확인하고, 범위설정을 위한 합의점을 모색할 계획이다.
정부가 내놓은 아동정책에는 아이를 분만한 병원이 지자체에 출생사실을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도 들어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않아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학대 받고, 방임된 채로 사망하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모든 출생아동을 국가에 통보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출생신고를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어 종종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발견된다. 출생신고를 하기 어려워 베이비박스 등에 유기된 아동도 2017년 한해 261명에 달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투명인간’으로 살다 숨진 하은이 사례를 막겠다는 것이다.
출생통보제는 불법체류 이주여성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아동의 ‘등록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셈이다. 다만 불법 체류 외국인이 낳은 아동에 대해서도 출생신고를 받고 기본권을 보장할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또 출산을 숨기려는 임산부의 병원 출산기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위해 상담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 도입도 병행할 방침이다.
김대우 기자/dew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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