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영장발부 배경·전망
법원 “혐의 소명…증거인멸 우려” 검찰 “법원 밖 인사 곧 사법처리” 박병대 전 대법관은 영장 기각
법원이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결정한 데는 ‘재판 거래’에 직접 관여한 물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 고위직 판사들을 중심으로 ‘재판거래는 없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법원이 “혐의가 소명됐다’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막바지로 향하는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4일 양 전 원장의 영장 발부 사유를 보면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40여개의 개별 혐의가 대부분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판거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000만원 조성 등 반헌법적 중대범죄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법원은 ‘양승태-박병대-임종헌’으로 이어지는 지시·보고 관계에서 박 전 대법관이 없어도 공모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이 단순히 보고받은 수준을 넘어 ‘재판거래’를 진두지휘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준 셈이다. 무엇보다 한자 ‘大(대)’자로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꼼꼼히 기록한 ‘이규진 업무수첩’과 일본 기업 대리인을 직접 만나 일제 강제노역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 지연을 논의한 정황을 담은 ‘김앤장 문건’, 특정 성향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도록 직접 ‘V’표시를 했다는 ‘물의 야기 법관 문건’ 등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관여를 확인한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직 대법원장인 만큼 구속영장 발부가 쉽지 않았을 텐데 범죄 혐의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소명됐기 때문에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그간 수사를 통해 확보한 물증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 관계를 넘어 직접 개입했다는 것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영장심사에 참석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 역시 오히려 구속 필요성을 더욱 높여줬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따지면 전직 대법원장의 책임이 불가피한 점이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과거 하급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서 구속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구속영장 발부로 그간 논란이 돼온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 구조도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같은날 영장심사를 받은 박 전 대법관은 구속을 면했다. 재판업무를 맡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에는 ‘공모관계가 없다’는 판단이 재차 내려진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장은 법원조직법상 사법행정권 총 책임자인 동시에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기 때문에 ’직무권한’이 있다고 볼 여지가 더 넓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영장심사 전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서 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며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영장 결과를 통해 전직 대법원장의 직권에 대한 정의를 법원이 어느정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늦어도 다음달 중에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최대 20일 안에 양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기지 않으면 석방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서영교 더블어민주당 의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법원 밖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방안도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등 사법농단 사태의 본류가 일단락된 후 본격적으로 법원 밖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