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까기’였다. KB국민은행 총파업을 바라보는 한 내부자의 인식이었다. 기자가 태어나던 때에 국민은행에 입행한 50대 직원은 “노조도 은행도 갈등만 빚다가 고객들 등 돌렸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직원 숫자를 자랑하는 국민은행이, 끝끝내 지난 8일 총파업을 했다. 지난해 말 노사가 테이블에 앉아 ‘임금ㆍ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을 벌였지만 해를 넘기도록 몇몇 쟁점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결과다. 은행 바깥에서는 ‘성과급’만 잔뜩 부각됐으나, 사실 노사는 회사에 관한 여러 현안을 가지고 교섭을 벌였다.
직원의 연차(호봉)가 높아져도 직급 승진을 못하면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제도인 페이밴드, 임금피크제 등도 성과급 못지않은 주요 쟁점이었다. 노조는 국민은행 ‘L0’ 직군의 처우 개선도 사측에 강하게 요구했다. L0는 2013년~2014년 사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생긴 직급이다. 은행엘 가면 만나는 안내 직원, 창구 텔러들이 여기 묶인다.
노조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은행의 구성원들에게 문제되는 여러 이슈를 두루 사측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노조 측에선 늘 “이번 파업의 핵심은 신입 행원들과 저임금 인력들이 입는 각종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임단협 협상에선 결국 성과급이 핵심 쟁점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은행권의 한 인사는 “성과급 등을 제외한 요구 조건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노사의 서로다른 인식은, 총파업으로 번졌는데 국민은행은 잃은 게 많다. 일단 은행을 향한 고객들의 싸늘한 여론을 직면했다. ‘귀족노조’, ‘성과급 파티’, ‘이자 장사’ 같은 단어들이 날뛰었다. 이건 노조만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사측만 겨냥한 것도 아니다. 그간 고객들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막대한 대출금을 밑천 삼아 소위 ‘이자장사’를 했다는 불만, 이게 이번 파업을 통해 ‘모두까기’로 터져 나왔다.
더불어 은행업의 고임금, 저효율 구조에 대해 전국민이 이해하는 계기도 됐다. 굳이 은행 영업점을 찾아가서 업무를 볼 필요가 없는데, 파업이 왠 말이냐는 목소리들이 온라인 댓글창을 가득 채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 파업이 그간 쉬쉬하던 은행업계의 치부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한 영업점 직원은 파업에 참가했지만 이런 속내를 기자에게 얘기하기도 했다. “일터로 복귀한 뒤에 직원 개개인이 담당하던 거래 고객들에게 연락하고 찾아 다니면서 왜 파업을 벌였는지 설명할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국민은행은 직원들의 연대감도 다시 다져야할 상황이다. 지난 8일 총파업 전날, 조합원들은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 모였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밤을 지샜다.
하지만 일부 영업점 직원들은 ‘은근한’ 회유에 조용히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본점에 근무하는 조합원들은 파업을 앞두고 “우리도 연대하겠다”고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지만, 정작 체육관에 나타난 얼굴은 많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노조는 사측이 계속 합의하지 않으면 1월 말에 2차 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은행 노사는 지난 주말에도 교섭을 벌였지만, 또 빈손으로 헤어졌다.
글 첫머리에 언급한 국민은행의 50대 직원은 “2차 파업은 이미 동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00년에 주택은행과 합병 앞두고 벌인 총파업에 참여한 뒤에 복귀하자 고객들이 ‘수고했다’,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노조도 회사도 모두 이젠 세상이 그때와는 달라졌음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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