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성 포르피리우스 교회. 그리스정교회 소속인 이 교회에서 최근 팔레스타인 이슬람교인 수백여명이 알라신에게 기도를 하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교회 측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인은 물론 이슬람교인 등 모든 이웃을 돕겠다”며 가자 지구 피난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 것이다.
이슬라엘의 포격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교회는 이슬람교인을 품었고 이슬람교인 역시 교회를 안식처로 삼았다. 예수의 2000년 전 가르침은 전쟁 속 작은 평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개신교인들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은 무색한 듯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연 지난 16일 200여명의 개신교인들이 인근에서 교황 반대 집회를 열었다.
‘로마 가톨릭ㆍ교황 정체 알리기 운동연대’는 이날 집회를 갖고 “기독교의 유사종교인 로마교, 마리아교인 가톨릭을 위해 어떻게 대한민국의 중심부인 광화문을 내어 줄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대는 또 “이는 대한민국 앞날에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불러들이는 단초가 될 것”이라면서 교황을 ‘적그리스도 우상숭배자’라고 깎아내렸다.
물론 가톨릭의 부정ㆍ부패에 반발해 개신교가 탄생한 측면도 있는 만큼, 교황에 대한 ‘불편함’도 일견 이해할 수 있다. 또 종교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최근 몇년 새 개신교도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도 위기감을 높였을 수 있다.
종교문제에 끼어들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부 개신교의 배타적 자세는 경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웃은 물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비춰 보았을 때도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교황은 일찍이 “누군가가 진지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호소를 하면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를 것입니다”라며 포용을 강조한 바 있다. 종교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의미가 깊어 보인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교황 방한으로 종교간 화해와 평화, 다툼의 지구촌 화합을 논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는 구절이 아닐까. ‘믿음’ 보다 ‘사랑’이 먼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