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하고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전략을 세워 현실화시켰던 성웅 이순신 장군과 같은 영웅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명량’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명량)에서 12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쳐 해전사에 길이 남은 명량대첩을 작품화한 것입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조선 수군에게는 당시 12척의 배만 남아 있었고 왜군은 330여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두려움에 빠져 있던 병사들을 ‘죽기로 싸우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말로 독려하여 왜군을 물리쳤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을 진두지휘하며 두려움을 용기로 바꿉니다. 두려움을 극복한 조선 수군은 왜군과 전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왜군을 죽이고 상해를 가합니다. 이처럼 왜군을 살해하고 상해를 가하였음에도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에게 살인죄나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행위가 형법상 범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형법상 금지 또는 요구되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미리 명문으로 기술해 놓은 것)에 해당해야 할 뿐 만아니라 위법하고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위법하고 책임이 인정되어 범죄가 성립합니다.
구성요건에 해당한다하더라도 위법성을 소멸시키는 사유(위법성조각사유-예를 들면 정당방위, 긴급피난, 피해자의 승낙, 정당행위 등)가 있거나, 위법하더라도 책임을 소멸시키는 사유(책임조각사유-예를 들면 책임무능력, 기대불가능성 등)가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전쟁 중에 적군을 사살하는 것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나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조선 수군이 왜군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왜군을 죽이거나 상해를 가하여도 살인죄나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형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자기보호원리 및 법질서수호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국가적·사회적 법익에 대한 정당방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에 대한 정치사찰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한다는 명목으로 군무를 이탈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울적하고 답답한 우리의 마음을 달래 줄 영웅이 필요한 시기에 ‘명량’이라는 영화가 나와 흥행 중입니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죽기로 싸우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비장한 각오의 장계에서 볼 수 있듯이 절망적으로 어렵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의 장점을 승리의 원동력으로 삼는 이순신 장군의 지혜와 용기, 긍정적인 리더쉽을 갈구하는 국민들의 열망도 흥행의 한 이유일 것입니다.
어렵고 절망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순신 장군은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여 두려움의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줍니다. 두려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할 줄 아나, 그 두려움에 압도되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당·송 8대가 중의 하나인 한유(韓愈)의 잡설(雜說)에 나오는 ‘千里馬常有 白樂不常有〔천리마상유 백락불상유-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주나라 사람으로 명마(名馬)를 보는 눈이 누구보다 뛰어났던 인물)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영웅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잠재적 영웅이 얼마나 많을지 모릅니다. 단지, 우리에게는 이러한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백락과 같은 안목이 부족할 뿐입니다.
자문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