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권남근 기자]하루아침에 성장한 기업은 없다. 작은 사업으로 출발해 부침을 거듭한 뒤에 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태(母胎)기업은 그룹들에 상징적이다. 세월이 변해도 잊기 어려운 근본이자 뿌리같은 기업이다. 그래서 그룹 총수들은 모태기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창업주로부터의 승계라는 상징성도 있다. 그룹 유동성위기 해소를 위해 팔았던 모태기업을 사들이고, 사업구도가 재편되도 이름만큼은 유지하고 싶어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최근 금호고속 인수에 나서기로 했다. 단순 의지 표명이 아니다. 기필코 되찾겠다는 생각이다. 금호고속은 1946년 박삼구 회장의 부친인 고 박인천 회장이 광주에서 설립한 그룹의 모태 회사다. 박 회장은 지난 6월 열린 박인천 회장 추모식에서 금호고속을 꼭 되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2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해 금호고속 지분 100%와 서울고속터미널 39%, 대우건설 12.3%를 합쳐 총 9500억여원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금호고속의 최대주주인 IBK투자증권 PE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펀드는 지난달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를 매각 주관사로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금호아시아나는 우선매수협상권을 갖고 있다. 인수자금이 관건이긴 하나 현재로선 박 회장의 인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2010년 현대건설을 인수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사업 강화 및 시너지 창출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家의 장자로서 선친인 정주영 회장이 세운 현대건설을 품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되긴 했지만, 모태기업을 찾아왔다는 점이 중요했다. 장자로서의 지위가 더 확고해진 것은 물론이다. 정 회장은 2001년 계열분리 당시 자동차 부문만 떠안은 채 현대그룹의 상징인 계동 사옥을 떠나 현대차그룹의 본사인 양재동 사옥으로 옮겨온 바 있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 뒤 계동사옥으로 출근하면서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물산, 제일제당 등과 함께 모태기업인 제일모직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제일모직은 1954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회사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기 전까지 등기이사로 있을 정도로 각별히 아낀 회사였다.
사실상 제일모직은 섬유ㆍ패션보다는 화학과 전자재료 사업 등 소재 위주의 사업 비중이 컸다. 사업성격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룹 정통성을 감안, 이름만은 그대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삼성그룹 전체의 계열사 개편작업속에 제일모직은 지난 3월 삼성SDI에 흡수 합병이 결정되면서 법인이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삼성에버랜드가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꾸면서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12월 패션사업부를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한 바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사명을 ‘제일모직주식회사’로 바꾸고 7월4일 주주총회를 통해 이를 확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모태기업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그룹 총수로서는 수익성과 관계없이 이를 유지해가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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