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슈섹션] 113년 전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제정 러시아의 순양함 돈스코이호가 바닷 속에서 발견됐다. 선체의 형태와 내부 구조 등 자세한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선체 측면에 새겨진 알파벳을 통해 돈스코이호라는 점이 발견된 선박이 돈스코이호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돈스코이호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과도 연관돼 있는 귀중한 전함이다. 돈스코이호는 러시아 전쟁 영웅 드미트리 돈스코이(1350~1389) 대공의 이름이 붙은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다.1905년 5월 29일 일본 함대의 포위를 뚫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다 울릉도 앞바다 70㎞ 해상에서 다시 포위됐고 레베데프 함장은 배를 일본 해군에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 울릉도 동쪽 앞바다로 최대한 배를 이동시킨 뒤 수백명의 선원을 해변으로 이동시켰다. 그뒤 배수판을 열어 배를 고의로 침몰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1916년 일본이 처음으로 돈스코이호의 탐사를 시도한 이래 국내에서는 1981년 도진실업이 최초로 시도한 바 있으나 기술의 한계로 실패했다. 1999년 10월 동아건설이 같은 사업에 착수, 몇 해 후 실체를 확인됐다고 밝히면서 2000년대 초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몇년 후 결국 중단됐다. 이후 2015년 동아건설 임원진이 주축이 돼 만든 신일그룹이 뛰어들어 지금까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돈스코이호에 실제로 보물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돈스코이호 침몰을 목격한 울릉도 주민의 증언,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해군 제독 크로체스 도엔스키 중장의 기록과 가장 유력한 자료는 1932년 뉴욕타임스(NYT)의 보도 내용 등에 의존해 추정할 뿐이다. 다만 1932년 보도는 침몰 시점에서 무려 27년이나 지난 후의 기록으로 신빙성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배에 대한 기록으로는 1905년 8월 10일자 황성신문과 울릉공보, 울릉군지에 기록된 바 있다. 황성신문은 1905년 1905년 5월 29일 오전 6시 46분 돈스코이호 침몰 당시 상황을 목격한 울릉군수 심흥택의 상부 보고를 보도했고, 레베데프 함장을 구하고 받은 금화가 담긴 동주전자의 실존과 울릉도 주민들의 증언을 기록한 울릉군지도 존재한다. 다만 전체 보물의 규모와 선적량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상세한 기록은 1932년 11월 28일 NYT에 게재된 기사다. 신일그룹에 따르면 당시 NYT는 ‘침몰한 배의 금을 사냥하는 일본’이란 제목으로, 돈스코이호에는 영국 소버린 금화 5000파운드 상자 5500개를 싣고 있었으며, 이는 무게 200톤으로 당시 5300만달러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1만4000명의 해군을 출병시켜 원거리 항해했고 연료, 식수, 보급품 구매와 장병 임금 등을 금화로 지급해야 했기에 대규모의 군자금을 싣고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신일그룹이 주가조작이나 투자사기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1998년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처했던 동아건설 주가가 돈스코이호 효과로 10배가량 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승인이 나기 전에 인양 계획을 발표한 점, 그룹 대표이사가 너무 젊다(1987년생)는 점 등을 이유로 의혹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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